신간 :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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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행복법 ①오늘에 충실 ②상호교감
딱. 사과 껍질을 벗기려 처음으로 칼집을 내는 소리. 이 소리에 녀석은 반응했다. 내 상식으로는 인간보다 1만배나 후각이 뛰어나다는 녀석은 냉장고 혹은 베란다에서 사과를 꺼내오는 그 순간에 알아차려야 맞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 순간에 반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딱 소리를 듣고 나서 혹은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당연히 자신의 몫도 있어야 한다는 걸 알리려 꼬리를 치며 다가왔다.
초코. 벌써 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가는 일도 생긴 봄날. 더위가 찾아오자 2년 전에 떠나간 그 녀석이 생각났다. 유난히 털이 복슬복슬하고 연한 갈색이던 시추. 원래도 더위를 심하게 탔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계절이 점점 당겨지는 녀석을 보면서 막연하게 '이제 이별이 언젠가 오겠구나'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갑자기 한여름처럼 기온이 올라간 6월의 어느 날, 방충망을 찢고 베란다로 나간 녀석은 아마도 고열에 의한 호흡곤란이나 쇼크로 다시 창문 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녀석은 나의 반려견이 아니라 처가에서 키우던 강아지였다. 아내의 가족과 12년을 함께 산 초코는 굉장히 겁이 많은 녀석이었다. 특히 미용을 무서워해 미용실에 데려다주고 돌아올 때면 그 애절한 눈빛 때문에 마음 쓰인다는 아내나 처제 대신 내가 미용을 맡긴 적이 많았다.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도저히 못 하겠다는 그런 건 아니었으므로. 초코가 그렇게 가던 날도 식어버린 녀석의 몸을 천으로 잘 감싸서 화장터로 가는 차에 실은 것도 나였다. 상대적으로 더 이 일에 냉정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떠나보내고 위로로 건넸던 말은 "초코는 12년 동안 여기서 살면서 그 어떤 형제들보다 행복했을 거야"였다.
세계적인 명상 지도자 데이비드 미치가 쓰고 추미란이 옮긴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 죽음 뒤에 슬픔을 다루는 법 등을 나누는 책이다. 저자는 어릴 적 반려토끼 '버그스'가 죽었을 때 목사로부터 "그가 하늘나라에 올라가 토끼를 사랑하는 천사들에 둘러싸여 우리 집에서처럼 쟁반에 예쁘게 채 썰어 담겨 나오는 배춧잎을 음미하고 있다"는 말을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너무 추상적이었다. 토끼 이후 기니피그, 고양이 등 여러 반려동물을 만나고 그들을 떠나보내며 저자가 찾은 답은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에 있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반려동물과 함께 명상하기나 불교적 관점에서 보는 동물의 생명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있다.
초코는 과연 정말 행복했을까.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이다. 떠나보내던 당시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말이다. 평균적인 견생(犬生)을 고려했을 때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물어보거나 확인받은 건 아니니까. 저자는 "가끔 나는 우리 사회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동물도 의식적 존재라는 사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행복, 흥분, 신기한 것을 원한다는 사실, 우리와 달리 움직임의 자유를 얼마나 제한받고 있는지도 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라고 자문한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게 산책이다. 개의 입장에서는 집 안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초코와의 산책을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경우,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까(마음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으므로) 하여 팟캐스트를 통해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다든가, 음악을 듣는다든가 하는 시도를 해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사람, 장애물, 자동차와 상관없이 코를 처박고 전진하는 이 작은 생명체를 인도하는 것이 귀를 틀어막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만뒀다. 녀석과 함께 다니면서 지금은 갈 일 없는, 아마도 평생 갈 일 없을 것 같은,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물론 공원이나 놀이터 같은 흔하게 가는 곳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거주민이 아니라면 있는지도 모를 골목들을 누볐다. 그러면서 같은 견종을 키운다는 사람도 만나고 정신이 살짝 이상한 게 틀림없는, 만날 때마다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아주머니도 만났다. 또 하늘로 솟아 있는 것을 보면 무조건 영역 표시를 해야 하는 녀석 탓에 동네에 가로수와 전봇대가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됐다.
우리는 반려동물과 애정을 주고받기를 즐기고, 이것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유다. 저자는 반려동물과 함께함에 있어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현재를 중심으로 살아가자는 것. 인간은 대개 미래 지향적이다. 직업, 주거, 환경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많아서다. 저자는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미래만 바라보느라 현재를 충분히 살지 못하는 경향을 우리 동물 친구들에게 강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와 비교했을 때 그 수명이 눈 깜짝할 새 끝날 생명체라면 막연히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가정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방적 감정이 아닌 상호 교감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신은 반려동물과 서로 배려하는 행복한 관계를 영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반려동물과의 교류도 일상이 돼 건성건성 하기 쉽다. 우리의 반려견이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개의 안부를 궁금해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무 관심도 없고 그 대화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그저 내 얘기를 들어주는 대상 정도로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알아차림'이라는 수행을 제시한다. 비종교인이 보기에 거창함이 느껴지는 '수행'이라는 단어를 살짝 빼고 보면 이는 관찰과 교감 시간을 늘리라는 말이다. 반려동물이 행복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행복한 상태인지 느껴보려고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이제 그 녀석이 떠난 지 2년, 그 후로 새로운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고 있다.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이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긴긴 시간을 홀로 잠을 자거나 소소한 모험을 하면서, 때로는 더위를 견뎌내며 보냈을 그 녀석이 생각나서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한 것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때때로, 어쩌면 일방적 기대일지 모르지만, 어린 아들과 친한 친구가 돼줬을 그 녀석이 생각난다.
먼동이 터오는 아침에 /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 ( )와 함께 걸었네 /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 데이비드 미치 지음 / 추미란 옮김 / 불광출판사 / 1만6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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