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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단독]대림산업 2009년부터 저성과자 퇴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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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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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산업이 2009년부터 직원 퇴출을 목표로 저성과자 대상 ‘성과향상과정’을 운영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사업부 내에서만 한 해 평균 25명의 직원이 저성과자로 선정돼 성과향상 관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과정에서 탈락한 직원들은 희망퇴직과 해고를 통해 회사에서 퇴출됐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성과향상과정을 통해 퇴출된 직원만 95명에 달한다.

앞서 대림산업은 올해 초 저성과자들과 회사에 불만이 있는 직원들을 선별해 자발적으로 퇴직시키려 한 ‘직원 퇴출계획’ 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논란을 빚었다. 직원 퇴출 논란에 대해 대림산업은 해당 문건은 아이디어 차원이며 실제로 실행된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시공능력평가에서 3위를 차지한 대형 건설사다.

저성과자들 대상으로 2009년부터 시행

대림산업이 2009년부터 실시한 성과향상과정(PIP·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의 시행 목적은 ‘성과주의 문화 정착과 조직의 건전한 긴장도 유지’다. 저성과자에 대해서는 ‘역량개발법 활용을 기본으로 하되 성과향상이 불가능한 인원에 대해서는 퇴출접근법을 활용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퇴출접근법은 매년 일정 비율의 성과 저조자를 상시적으로 퇴출한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관리원칙이다. 전체 직원을 상위 20%와 중간 70%, 하위 10%로 나누고 하위 10%에 해당하는 직원을 퇴출 중점 대상으로 지정한다.

성과향상과정 대상자는 인사평가 연속 하위자 가운데 조직책임자와 각 본부 주관팀장의 면담을 통해 선정된다. 대상자는 3단계로 구성된 상과향상과정을 6개월에 걸쳐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매주, 매월 단위로 평가가 이뤄진다. 성과향상과정 중 단계별 탈락자에게는 ‘희망퇴직’을 제안한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 가운데 모든 과정을 마치고 역량 향상이 이뤄지지 않은 직원은 인사위원회에 회부된다. 인사위원회에서는 직원의 ‘해고’ 여부를 결정한다.

성과향상과정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을 통해 <경향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2009년 29명의 직원을 성과향상과정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성과향상과정을 통과한 직원은 8명으로 21명의 직원이 탈락 통보를 받고 퇴출됐다. 2010년에는 대상자 23명 가운데 13명이 탈락해 퇴직했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한 해 평균 11명의 직원이 성과향상과정 대상자로 선정됐고, 이 기간 동안 95명의 직원이 회사에서 퇴출됐다. 성과향상과정이 사실상 저성과자 퇴출 도구로 활용된 셈이다.

대림산업 직원들은 일방적인 성과향상과정 운영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단 성과향상과정 대상자로 선정되면 이의제기를 할 방법이 없다며 개선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기존 성과향상과정을 강행했다. 2017년 대림산업 노사협의회인 한숲협의회는 “협의회 의장단에서 제도를 검토했지만 운영상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다만 대상자로 선정된 직원이 이의가 있을 경우 한숲협의회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대림산업이 작성한 성과향상과정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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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밖에 난 노동자 저성과자로 몰 소지

저성과자 평가 프로그램은 고용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기업에서 흔히 활용하는 방법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역량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근로계약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현행법상 저성과는 정당한 해고사유로 인정받기 어렵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제158호 조약에서 “노동자의 고용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종료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성과향상과정과 같은 저성과 평가를 거치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업은 노동자의 ‘무능’을 객관적인 저성과 평가과정을 거쳐 입증했다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 나름의 퇴출 근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림산업 역시 성과향상과정을 관리하는 본부 주관팀장과 현업 보직자에게 운영 전 과정을 철저히 기록하고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향후 퇴직 관련 분쟁이 발생할 경우 명확한 근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저성과 평가과정을 통하면 퇴출의 ‘정당성’이 생기는 것일까. 성과향상과정을 비롯한 모든 저성과 평가는 사용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뤄진다. 대상자 선정부터 평가기준, 프로그램도 사용자가 세운다. 회사 정책에 반대하거나 눈 밖에 난 노동자를 능력 부족으로 몰아 저성과자로 낙인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사용자의 잣대로 일방적으로 만든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며 “프로그램 설계 단계부터 평가까지 노동자가 참여하고 결과에 대해 소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림산업 ㄱ차장은 2009년 성과향상과정에서 탈락했다. 이후 ㄱ차장은 ‘근무성적이 불량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해고 당했다. ㄱ차장의 중대 해고 사유는 근무역량 미흡이다. 관리대장 미작성, 외주업체 근재보험 가입현황 미흡 등이 징계 사유로 명시돼 있다. 저조한 평가결과와 함께 조직융화 저해도 해고 이유가 됐다. 문서상 빈틈이 없어 보이지만 해당 사유만으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문서상 해고 사유가 명백해 보이는 사례도 정작 부당해고 소송에서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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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산업이 작성한 성과향상과정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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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화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관리대장 미작성이나 관리 미흡은 사용자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징계사유”라며 “많은 기업들이 저성과자 평가 프로그램을 악용해 퇴직을 강요하고 노동자를 해고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은 저성과자 퇴출 논란과 관련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림산업 측은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완화를 골자로 하는 ‘양대 지침’이 생긴 뒤 2년 동안 성과향상과정을 운영했고, 그 이전에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식적인 평가절차를 거쳐 진행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년부터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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