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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말벡, 아르헨티나 문화를 전하는 레드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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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의 미식탐구-5] 말벡(Malbec),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름. 농익은 검은 포도로 만든 진득한 과실의 뉘앙스와 남성적인 힘을 불어넣는 가죽향,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초컬릿 느낌까지 파워풀하고 호쾌한 와인을 만드는 매력적인 품종이다. 외모로 묘사하자면 근육질로 몸을 가꾼 남미 미남을 떠올리게 하는 와인으로, 아마 그의 성격은 억세기보단 부드럽고 젠틀한 스타일일 것 같다. 강건한 구조감을 주면서도 타닌은 부드럽게 숙성되는 편이라 거칠고 투박한 야생마적 면모보다는 살짝 느끼한 미남에 가깝다고나 할까.

◆말벡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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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최대 와인생산지 멘도자 지역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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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프랑스 남서부 쿠아 보르도(Bordeux) 등에서 재배되던 이 남프랑스의 토착 품종은, 이제 아르헨티나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그 역사는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을 역임하기도 한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Domingo Faustino Sarmiento)에 의해 아르헨티나에 심어진 것이 그 시작. 와인 품종의 도입일이 알려져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라 1853년 4월 17일이라는 최초 식재 기록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으로 치면 '처음 고춧가루를 재배한 날짜'가 기록으로 있는 셈이다.

아르헨티나 와인은 곧 말벡이요, 말벡은 아르헨티나 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최대 생산 품종은 말벡으로, 전 세계 말벡 와인 4개 중 3개가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된다. 역사를 찬찬히 짚어보면 프랑스에서 바로 아르헨티나로 품종이 들어온 것은 아니고, 칠레를 거쳐 멘도사 지역으로 들어왔다. 말벡은 멘도사 지역의 테루아와 훌륭한 궁합을 보이며 아르헨티나 와인 산업을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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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벡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일조량과 따뜻한 기후가 필요하다. 아르헨티나에는 말벡 품종의 잠재력을 힘 있게 끌어낼 수 있는 땅과 기후가 있었다. 말벡은 대표적인 레드 와인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보다 더 색이 짙고, 단단한 껍질과 풍부한 타닌이 특징. 또한 프랑스에선 말벡이 주로 보르도 블렌딩의 하나로 사용된 것과는 달리, 아르헨티나에서는 단일 품종으로 인상 깊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90년대에 아르헨티나에서 국가적으로 와인 산업을 육성하며 수출에 적합한 고부가가치 프리미엄 와인을 만드는 것을 지원했는데, 이때 말벡 품종에 대한 연구와 개발,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지금은 세계 각 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아르헨티나 말벡 프리미엄 와인을 접할 수 있다.

◆9회를 맞이한 말벡 월드 데이(Malbec World Day)

앞서 언급했듯 아르헨티나 와인 산업의 주역인 말벡 품종이 처음 땅에 심어진 날은 1853년 4월 17일이다. 같은 날짜에 아르헨티나 와인 품종 연구 등을 위한 농업학교와 연구소 설립을 위한 법안이 아르헨티나 의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이런 운명적인 날을 기리기 위해 아르헨티나에서는 2011년부터 매년 4월 17일을 '말벡 월드 데이(Malbec World Day)'로 지정했다. 자국 와인의 전 세계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와인즈 오브 아르헨티나(Wines of Argentina)에서 국가 전체의 와인 산업 확장과 홍보를 위해 세계 각 도시에서 축제를 벌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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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서울 말벡 월드 데이의 테라자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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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베크가 대표적인 레드 와인 품종으로 알려지고 소비자들의 선택지에 오른 한국에서도 전 세계 60여 개 도시와 동시에 말벡 월드 데이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로 9회 차를 맞은 말벡 월드 데이 행사는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호텔 테라스에서 진행됐다. 국내 20여 개 수입사에서 각각 수입하는 말벡 와인들을 한자리에서 테이스팅할 수 있던 자리로 소믈리에 등 업계 관계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한편 2018년 국제주류품평회(IWSC)에서 '올해의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자상'을 수상 테라자스(Terrazas)의 특별 부스가 마련돼 아르헨티나식 쇠고기 꼬치구이 등과 말벡의 마리아주를 즐길 수 있었다.

◆말벡과 최상의 마리아주는 그릴한 소고기

우선 아르헨티나 말벡의 특징을 살펴보면, 특히 한국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입안에 풍성하게 퍼지는 과실 느낌이 쉽게 호감 가는 첫인상을 만들고, 드라이하면서도 입안에 여운이 길게 남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며, 와인의 복합미를 더하는 다양한 부케도 아르헨티나 말벡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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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대표 음식 아사도(asado: 구운 소고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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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더 맛있게 마시는 법은 궁합이 맞는 음식과 함께 즐기는 것이다. 소믈리에와 셰프가 이야기하는 와인 마리아주, 즉 와인과 음식을 매치하는 법칙의 가장 기본은 같은 지역에서 생산한 와인과 토착 음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말벡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에서 흔히 먹는 요리가 최고의 짝이다. 그릴에 구운 소고기, 양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뒤 치미추리소스를 곁들이면 전통적인 말벡 마리아주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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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미추리 소스를 올린 소고기 스테이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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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미추리소스는 파슬리와 마늘, 오레가노와 적후추, 레드 와인 비네거, 올리브오일을 한데 섞어 만든 매콤새콤한 소스로, 숯불이나 직화에 터프하게 구운 고기가 텁텁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생동감을 준다. 불맛과 연기향이 살아 있는 고기에 치미추리소스를 푹 찍어 먹고, 말벡을 한 모금 마시면 와인 마리아주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떡갈비나 매콤한 양념 돼지갈비 등 양념이 진한 한식 육류 요리도 말벡에 훌륭하게 어울린다. 한편 말벡은 강건하고 파워풀하며 과실 아로마가 충분한 레드 와인이므로 광어회 등의 날생선, 특히 흰살생선은 최악의 궁합이며 와인 안주로 쉽게 준비할 만한 과일이나 모차렐라, 브뤼 등의 부드러운 치즈 또한 추천하지 않는다.

말벡 데이를 맞아 말벡에 관해 생각하고 말벡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이 저마다 말벡 한 병 마셔야겠다며 마트로, 와인숍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아르헨티나의 뜨거운 햇살과 열정을 담은 말벡, 오늘 한번 마셔보는 건 어떨까.

[이정윤 콘텐츠디렉터·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julialee@diningmedia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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