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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경제난, 사회적 불만…끔찍한 '묻지마 범죄' 양산한다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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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인 대상으로 벌이는 '묻지마 범죄'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 /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 병력자에 대한 세심한 관리 필요 / 개인의 불만 유발, 생존권 위협할 수 있는 요인 줄이는 방안 마련해야 / 잔혹한 범죄 사회병리적 원인에서만 찾는 것도 지양해야

불특정인을 상대로 벌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이제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살인 범행 당시 정신장애가 있는 비율은 2015년 7.5%, 2016년 7.9%, 2017년 8.5%로 늘고 있습니다.

사회 불만이 표출된 우발적 살인이 전체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37.7%, 2016년 38.8%, 2017년 41.9%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이번 진주의 아파트 범죄도 범인이 과거 조현병 전력이 있어 이 부류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특히 이번에 숨진 사람은 12세 여자 어린이 등 5명이며, 남성은 70대 노인 한 명뿐으로 범인은 약한 사람만 골라 살해했습니다. 현장에서는 덩치 큰 남성 주민을 마주친 범인이 노려보기만 했을 뿐 덤비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는데요.

범행은 매우 잔혹했습니다. 범인은 미리 준비한 흉기 2개를 사용해 여기저기서 대피하는 주민들을 마구 살해했습니다. 죽지는 않았지만, 병원에 실려 간 사람 중에 최소 5명은 흉기에 다쳤는데요.

적어도 10명이 범인의 흉기를 피하지 못한 셈입니다. 나머지도 범인의 방화에 따른 연기 흡입 등으로 이송됐습니다.

더욱 놀랍고 안타까운 점은 범인이 이미 1년 전부터 수차례 난동을 부리고, 주민을 위협·폭행했는데도 당국이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범인은 이웃집에 오물을 투척하고 욕을 하거나 폭행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도저히 대화가 안 된다'며 그냥 돌아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그때 당시 당국이 적극적인 대처를 했다면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묻지마 범죄'를 줄이려면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병력자에 대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개인의 불만을 유발하고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을 줄이는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다만 과거 조현병을 앓은 적이 있다고 해서, 사회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모두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 만큼 잔혹한 범죄를 사회병리적 원인에서만 찾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세계일보

한 40대 남성의 이른바 '묻지마 칼부림'에 진주시의 한 아파트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17일 새벽 화재를 피해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온 주민들을 기다린 것은 흉기를 든 안모(42)씨였는데요. 피해자들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낯선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중상을 입었고, 심지어 목숨도 잃었습니다.

주민 5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경남 진주의 '묻지마 살인 난동'이 사람들을 공포에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안씨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던 이웃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며 경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40대 남성이 목검과 흉기를 휘둘러 시민 2명이 다친 사건이나, 지난해 10월 경남 거제에서 20대 남성이 아무런 이유 없이 50대 여성을 때려 숨지게 한 일도 이번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08년 10월 2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는 당시 31살이던 정모 씨가 자신의 침대에 불을 지른 뒤 놀라 대피하던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6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정씨는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부과된 벌금 150만원과 고시원비,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지 못하게 되자 '묻지마 살인'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별한 동기없이 자행되는 '묻지마범죄' 줄어들지 않아

문제는 이처럼 특별한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 범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2013년 54명, 2016년 57명, 2017년 50명 등 연평균 50여건 발생하고 있습니다.

2017년 기준 묻지마 범죄 절반 이상은 살인과 상해 사건이었는데요. 한 번 발생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신장애가 있는 범죄자 재범률은 전체 범죄자 재범률보다 크게 높은데요.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신장애범죄자'로 분류된 이들의 최근 5년간 재범률은 2013년 65.9%, 2014년 64.9%, 2015년 64.2%, 2016년 64.3%, 2017년 66.3%였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범죄자 재범률은 2013년 48.9%, 2014년 48.2%, 2015년 47.2%, 2016년 47.3%, 2017년 46.7%로 정신장애인 재범률보다 현격히 낮았습니다.

세계일보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를 두고 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생긴 병리현상이라고 진단합니다.

경제적 빈곤, 사회적 소외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음에도 이를 적절하게 해소할 장치나 수단이 없어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묻지마 범죄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개인 문제로 방관? '분노조절장애' 범죄 예방 시스템 구축해야"

묻지마 범죄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극에 대한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다가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좌절감의 분출이라는 설명도 있는데요.

사회가 개인화하면서 '공동체 정신'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대상을 향한 범죄여서 대응이 쉽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사회안전망 구축이 대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들 범죄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방관할 게 아닌, '분노조절장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관리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반복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이라면 특별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일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설령 조현병이 있었다고 해도 조현병과 폭력적인 성향이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어서 정신장애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입니다.

◆조현병 환자 중 강력범죄자 비율 0.1%…감금·치료도 중하지만 '사후관리' 더 철저하게 해야

조현병은 망상과 환청, 정서적 둔감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정신적 질환입니다.

망상은 사실이 아닌 것을 확신을 가지고 믿는 것으로, 누군가 나를 해치려 한다고 믿는 피해망상,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수군댄다고 믿는 관계망상 등이 대표적입니다.

의료계에서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벌일 경우 자신이 위협 받는다고 느낄 때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발병 초기 망상 등 급성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입원과 약물복용 등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일정시기 이후엔 환자가 아닌 일반인들처럼 정상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강력범죄자 중 조현병 환자 비율은 0.7% 수준이고, 2017년 기준 평생 유병률로 추정한 조현병 환자(25만명) 중 강력범죄자 비율은 0.1% 수준에 불과합니다.

유병률이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1%인 점으로 미루어 한국에도 50만여명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요.

세계일보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아파트에 방화·살해한 안모(42)씨가 과거에도 위층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오물 투척하고 위협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연합뉴스


다만 이들 가운데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7년 기준 전체의 5분의 1 정도인 10만7662명에 그쳤습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조현병은 사회적 인식과 달리 조기에 진단해 치료를 받으면 별다른 장애 없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면서도 "치료 적기를 놓치거나 임의로 치료를 중단할 경우 효과가 떨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신질환자 관리의 초점이 감금 및 치료에서 사회 복귀로 옮겨가는 추세인만큼 '사후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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