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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육체의 고통 앞에서는 삶의 괴로움은 무력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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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출신 소설가 방현희 산문집 / ‘함부로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 펴내

세계일보

간호사로 9년, 소설가로 17년을 살다가 다시 간호사로 돌아가 글쓰기를 하고 있는 방현희(사진)씨가 산문집 ‘함부로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파람북)를 펴냈다. 간호사 시절에 목도한 삶과 죽음 사이 환자들을 떠올리며 생명과 생존, 고뇌와 고통에 대해 사유하는 글들이 포진해 있다. 백혈병으로 입원한 청년과 그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아버지, 고맙다는 인사로 마지막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남자, 알코올의존증으로 삶을 포기한 젊은 남자와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방기해버린 부모 등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삶의 마지막은 말할 수 없이 잔인하다. 삶이 고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에는 비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사람을 통해 목격했다. 괴로움은 고통 앞에서는 무력한 것임을.”

‘괴로움’이란 다분히 관념적인 어감의 고통이다. ‘번민’을 수용하기 위해선 정상적인 사고 기능이 가능한 몸이 받쳐줘야만 한다. 물리적인 고통은 그 괴로운 번민마저 무화시켜버린다. 고통은, 통증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나는 알았다. 목숨을 두고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겠다고 흥정도 할 수 있음을. 영혼이란 그동안 내가 견지해온 삶의 줏대 같은 것이나, 목숨을 놓고 흥정을 할 때는 바로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생명에게 신체란 영혼보다 무겁다는 것을. 생명의 본질은 오직 생존에 있고, 생존을 추구하는 생명은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숭고하다는 것을.”

세계일보

작가는 ‘세상에 우리 둘만 있었어도 어쩌면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가까웠던’ 친구를 지난해 잃었다. 그 친구는 “통증만 없으면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있는 힘은 오직 통증을 견디는 데 쓸 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는 상태. 그 친구는 이러한 여건에서도 “내 딸이 엄마가 고통받던 것만 기억하게 될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삶의 마지막은, 생존의 끝이란, 모양은 다양하지만 고통의 본질은 같다.

방현희는 “홀로 살아가는 사람을 추구하거나, 의존적인 사람임을 인정하거나, 동반자적인 관계를 추구하거나, 아픈 사람은 결국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장 아픈 순간은 어쩌면 인간이 가장 숭고해지는 순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아픈 순간 “그때에도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할 것이며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랑을 받기 원할 것”이다. 그 사랑, 고통 앞에서 두 손 들기 전에 미리 비축해 둘 일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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