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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중앙시평] 대학발 사회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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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사회 혁신 리빙랩으로

사회적·공적 가치 함양 가능

미래 이끌 혁신가 교육해 낼

‘대학발 사회 혁신’ 모색해야

중앙일보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필자가 이번 학기 중 가르치는 학부 수업 기말과제는 서울시 강동구의 마을공동체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전공과목이며 수업시간에 로컬 거버넌스(민관 협치), 사회적 자본, 참여 민주주의 등 딱딱한 정치학 이론과 문헌을 배운다. 하지만 동시에 학생들은 팀을 이뤄 사전 조사를 한 뒤, 강동구에 가서 구민과 활동가 그리고 구청 공무원과 함께 현장을 배우고 참여 관찰하며 연구한다. 그냥 연습으로 하는 모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실제 강동구와 연구용역을 체결했으며, 17명의 학부생은 교수와 박사 연구원 그리고 대학원생 조교 2명과 함께 강동구 마을공동체 5년 단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결과물을 학기말에 제시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마음먹고 하면 가능하다. 같은 방식으로 시흥시 사회적경제 발전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학생들이 관악구 주민·구의원과 함께 ‘서울특별시 관악구의회 의정 모니터 운영 조례’ 제정 과정을 주도하고, ‘성북구민의 밤’을 개최하여 성북구 ‘동행(同幸) 아파트 민주주의’ 모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필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2018년 한국정치학회는 서울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청주, 춘전, 수원을 포함, 전국적으로 20여 개 대학의 정치외교학 관련 학과에 지역참여형 정치학 수업을 개설·지원한 바 있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대학생이 만드는 청소년 민주시민 공론장 프로젝트로 서대문구 소재 고등학교의 민주시민 교육을 시행하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진구 후보자들을 초청하여 시민 매니페스토 전달식과 서약식을 하기도 했다. 외국어 대학의 특성을 살려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다양한 시민교육을 직접 제공한 사례도 있다. 용산구 미군기지 공원화 사업과 주거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동대문구 1인 가구 중심 지역의 마을 골목 정화를 위한 소용량 쓰레기봉투 도입 및 공동 쓰레기 수거함 설치 보조 정책을 제안했고, 신촌과 서대문구 지역의 역사적 자원과 정치적 사건을 배경으로 다크 투어리즘(비극적 역사 탐방) 코스를 개발한 수업도 개설했었다.

정치학만의 얘기도 아니다. 인문사회 전반, 나아가 모든 학문 분야에서 시도할 수 있는 모델이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은 올해부터 매년 정치외교·경제·사회·인류·심리·지리·사회복지·언론정보 모든 전공에 지역참여형/사회문제해결형 수업을 최소한 한 과목씩 개설·지원한다. 서울대 본부 차원에서 거교적으로 추진하는 ‘글로벌사회공헌단’ 사회공헌형 교과목 지원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대뿐 아니라 전국 여러 대학 곳곳에서 서비스 러닝, 캡스톤 디자인, 문제기반 교육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역참여형 교육 혁신을 시도한다.

이는 효과적인 교육기법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대학 발(發) 사회혁신’이다. 우선 취업을 위한 학점과 스펙 쌓기에 매몰된 우리 학생들을 사회적·공적 가치를 아는 시민으로 키우는 게 혁신의 시작이다. 지역참여형 수업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과 효능감, 협업능력과 책임감, 공감과 공공성 등 시민적·공적 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미래인재가 필요로 하는 핵심 역량이기도 하다.

위에 예시했지만, 더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사회혁신도 가능하다. 예 하나만 더 들어보자. 현재 30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국회로 넘어간 상태다. 주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지방자치를 통해 지역사회에 활력이 생기고 궁극적으로 지역 혁신과 균형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다. 주민조례발안제 등 주민주권을 강화하는 제도, 지방의회 정책 전문인력 지원, 읍면동 마을자치 활성화 등 여러 개선안을 담고 있다.

전국 각 지역 대학 수업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이 주민들과 함께 자신의 지역 혁신을 위한 조례를 발안해보면 어떨까. 여의도 국회의원들과 달리 지방의회 의원들은 국민 세금으로 보좌관 지원을 못 받는다. 수업시간에 훈련받은 준비된 학생들이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돕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2017년 말께 현 정부의 사회혁신 1호 사업으로 발표했다가 야당의 반대로 좌초한 혁신 읍면동 사업이라는 게 있다. 특히 중간지원조직 예산이 지방선거를 위한 관변조직을 만들기 위해 쓰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돈을 각 지역 대학 수업에 투입해 학생들을 읍면동 혁신 활동가로 활용하는 방법은 어떤가.

꼭 정치학 수업일 필요는 없다. 대학 수업을 ‘사회혁신 리빙랩(Living Lab)’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서울시를 위시한 몇몇 선도적인 광역·기초 지자체와 소수 공공기관은 대학 수업과 연계한 혁신적인 사업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SK 기업은 ‘사회혁신교육자네트워크(ENSI)’를 만들어 지원하기도 한다.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처럼 중앙정부 차원에서 큰 틀을 짜, 더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 보자. 하나의 아이디어로 각 지역 거점대학을 혁신 플랫폼으로 키워 ‘대학 발(發) 사회혁신’ 생태계를 전국적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해 본다.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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