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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필동정담] 풀꽃 이름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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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봄엔 아내를 따라다니며 풀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추위를 이겨내고 싹을 틔운 잎과 꽃을 보면 자연의 섭리에 경외감이 든다. 향과 모양에 푹 빠지다가도 몇몇 아쉬운 이름엔 짜증도 나고 화를 감출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붙어 잔재가 물씬 남아 있는 이름들 때문이다.

식물 이름은 스웨덴 학자 칼 폰 린네의 이명법을 따른다. 학명 뒷부분에 명명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다. 한반도에 자라는 자생종에는 1910년 전후 나카이 다케노신이라는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이 상당수다. 개나리, 할미꽃, 참이질풀, 섬초롱꽃, 섬오갈피 등 고유종 527개 중 나카이 이름이 등재된 것만 327개에 이른다.

봄을 상징하는 개나리도 동의보감에서는 어어리나모라는 이름이었는데 1922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식물명휘에 개나리로 학명을 부여받았다. 갸냘프고 귀여운 것이라는 뜻의 일본어 히메(姬)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아기나 각시가 아니라 개를 붙였다고 한다. 개다래, 개버들, 개망초 등도 비슷한 의미로 붙은 일제 잔재라니 아쉽다.

청사초롱 모양 연보랏빛 꽃인 금강초롱에는 화방초라는 학명이 붙어 있다. 한반도에 건너와 연구하던 나카이가 초대 일본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성을 갖다 붙인 것이다. 조선화관으로 불리는 백합과 꽃에도 사내초라는 학명이 있는데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에게 바치는 꽃이라며 학명을 조합했다.

봄까치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는데도 큰개불알꽃이라는 상스러운 이름이 붙은 것도 일제 때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 때문이다. 열매가 개의 불알처럼 생겼다며 이런 이름을 붙였다. 식물학자 박만규 교수는 예쁜 복주머니 모양이라며 요강꽃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며느리밑씻개라는 험한 이름의 풀도 의붓자식의 밑씻개라는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의붓자식 대신 며느리를 붙였다는데, 사광이아재비풀이나 가시모밀 같은 순우리말 이름이 따로 있다.

식물학자 이윤옥 씨는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라는 책에서 식물 이름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씻어내자는 과제를 던졌다. 학명을 바꾸는 건 시간을 두고 하더라도 표준어사전이나 식물도감부터 먼저 손보면 어떨까.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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