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성폭행 피해 증언 이어지는데 경찰 수사는 진척 없어
‘물뽕’ 시간 지나면 체내 성분 안 남고 가해자 확인도 어려워
7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버닝썬 등 클럽 관련 마약류 입건자는 53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버닝썬(15명)과 다른 클럽(29명) 관련자다. 이 중 클럽 내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약물 성폭행 가해자는 한 사람도 확인되지 않았다. 약물 성폭행에 이용된다고 알려진 ‘물뽕(GHB)’ 관련자는 입건자 중 9명(구속 1명)이지만, 모두 배송책이나 구매자들이다.
물뽕은 클럽에서 술 등에 타 여성에게 마시게 한 뒤 정신을 잃게 하는 소위 ‘몰래뽕’에 활용된다고 알려졌다. 여러 피해 사례·증언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피해는 제대로 입증되지 않고 있다.
약물 성폭행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투약 사실 자체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물뽕은 신체에서 그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액체 성분이기 때문에 모발 등 체모로 성분이 퍼지기 전에 소변으로 쉽게 배출된다. 마약류 검사를 해도 투약 여부를 확인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뽕을 투약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 성분이 남지 않아 투약 사실조차 입증하기 어렵다.
물뽕은 일정량을 투약하면 다른 마약류와 같이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 물뽕을 유통·구입한다고 반드시 성범죄에 연루되는 것은 아니다. 직접 사용하려고 구매하는 이들도 많다는 이야기다.
경찰은 약물 성폭행 피해를 입증하려면 피해 사실과 가해자를 모두 특정해야 하는데 둘 다 입증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경찰의 마약·성범죄 수사를 각각 다른 부서에서 전담하는 점도 약물 성폭행 입증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클럽에서 약물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호소와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이어진다. 버닝썬 폭행 사건 당사자인 김상교씨는 지난달 27일 “물뽕 피해 여성의 아버지와 만났다”며 “물뽕 피해 여성들에 대한 수사는 (경찰이) 조용히 쥐고 진척이 없다”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썼다. 김씨가 거론한 피해 여성은 지난해 12월 버닝썬에서 한 남성이 건넨 술을 마신 뒤 기억을 잃고 강남경찰서에서 정신을 차렸는데, 자신의 평소 주량보다 술을 적게 마셨다며 마약 검사를 요구했지만 경찰이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물뽕에 의한 성범죄 의혹이 많이 나왔지만, 현재 버닝썬 관련 마약 수사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난 것은 아직 없다”며 “현재 물뽕 관련 입건자들 중에는 ‘몰래뽕’ 용도로 약물을 판매·구입·사용했다고 진술한 이들은 없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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