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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굴기의 꽃산 꽃글]날개현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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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영민


산을 노랗게 제 방식으로 번역해내는 산수유에 벌 한 마리가 악착같이 들러붙어 귓속말을 전한다. 집요한 중매쟁이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보라지만 꽃은 아무런 흥미가 없다. 그저 올봄의 꽃밥을 만드는 데 열중할 뿐이다. 바람을 불러 도리질을 해 보지만 잉잉거리는 벌은 막무가내다. 꽃가루 대신 탄력이라도 달라고 찰거머리같이 덤빈다.

따뜻한 봄볕에 등을 지지는 감나무 아래 암탉이 동생 둘을 데리고 ‘뒤안’을 뒤지고 있다. 땅에게 뭘 좀 먹을 걸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낙엽을 뒤집고 흙을 쪼으며 여린 부리로 먹이를 찾는 닭. 아직 땅이 제대로 안 녹았는지 가끔 고개를 들고 먼곳을 보며 공중에 부리를 닦는다. 최선을 다하는 닭들의 거룩한 식사.

참 열심히 산다. 그 옆에는 이런 먹이를 광고하고 있다. 닭백숙/흑염소/오리/연회석완비/010-XXXX-XXXX. 지금 옹골찬 암탉 한 마리 잡아서, 뜨겁게 삶으면, 기름기가 좌르르르…. 입맛을 다시며, 고인 침을 닦으며, OO농장의 전화번호를 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나는 참으로 속(俗)되도다. 시냇가 한쪽에 개구리 알이 수북하다. 어떤 건 제법 성숙해서 눈알이 뒤룩뒤룩하다. 곧 올챙이로 쏟아져 나올 기세다. 옆 잘록한 웅덩이에는 올챙이들이 바위로 올라가려고 발 없는 꼬리로 발버둥친다. 용수철처럼 상승하려는 기운이 물씬! 이 세상의 봄은 이런 연약한 것들의 기운과 동작이 모이고 모인 집합일 테다. 21일은 춘분(春分)이다. 춘분은 수상한 봄이 봄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서 봄은 비로소 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된다.

여기는 경주와 포항이 맞붙은 운제산(雲梯山) 산여계곡이다. 혼자 특출하게 높지는 않아도 원효를 비롯한 신라 고승들이 구름의 사다리처럼 데리고 다닌 산이다. 모두들 어깨를 걸고 있는 형제처럼 다정하다. 낙엽더미 풍성한 곳에 날개현호색이 있다. 지체없이 몸을 풍덩 던졌다. 잎은 댓잎처럼 가늘고 꽃잎 옆에 날개 모양이 뚜렷하다. 낙엽들이 스스로를 해체하면서 흙으로 녹아들 때 그 어디로 비상하려는 듯! 날개현호색, 현호색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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