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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나…미·중 다툼에 수출마저 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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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경제위기 비상벨 울려

기업 둘러싼 경제 불확실성 증폭

미·중에 영·독까지 경기 둔화

비상체제 가동해 초격차 벌여야

점점 커지는 세계 동시 불황의 전주곡
중앙일보

미·중 경제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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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개를 들어 잠시 세계를 보면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에 빠져들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다. 세계의 패권을 놓고 미·중 무역전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유럽의 기둥인 영국과 독일 경제가 동시에 휘청거리고 있다. 그럴수록 한국 경제는 버티기 어려워진다. 당장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주력 수출 품목은 지난달 추풍낙엽처럼 힘을 잃었다. 간판 품목이던 반도체마저 수출 증가세가 확 꺾였다.

한국 경제가 불확실성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자 첫 경고는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로부터 날아왔다. 무디스는 ‘세계 거시 전망 2019∼2020’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내년 2.2%로 각각 낮췄다. 이제 한국 경제가 2%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 만큼도 힘을 내지 못한다는 우울한 전망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는 성장 엔진이 꺼져 자유낙하하는 비행기처럼 비상사태를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의 기억을 소환한다. 당시 외신들은 한국 위기설을 앞다퉈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외에 외환위기 해결책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물론 지금은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가 넘고 기업들의 부채도 많지 않다. 제2의 외환위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증후군’처럼 손도 쓰지 못한 채 치명적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 불길한 조짐은 점점 커지고 있는 수출 불확실성에서 오고 있다. 무디스는 “중국의 중간재 수요 둔화, 특히 반도체 수요 침체는 한국의 수출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런 불확실성은 미·중 무역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가 자유무역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중국이 ‘제조 2025’를 공식화해 첨단기술에서 미국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쉽사리 끝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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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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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파가 한국 경제를 시름시름 약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달에는 반도체·석유화학·석유제품·자동차부품·디스플레이·선박·무선통신기기·섬유·컴퓨터·가전 등 주요 품목의 수출이 마이너스로 꺾였다. 이중 선박·컴퓨터·반도체·무선통신기기·석유화학 등 7개 품목은 지난달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반도체는 지난해 2월 대비 24.8%나 줄었다. 이런 추세는 이달까지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미·중이 불꽃을 튀기고 있는 ‘화웨이(華爲) 전투’는 한치의 양보도 없다. 오히려 전투는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화웨이가 첨단기술은 물론 전투기·잠수함 등 첨단 무기체계와도 직결된 차세대 이동통신(5G) 장비를 제조하고 있어서다. 양국 모두 힘겨운 전투를 하고 있다. 미국은 우방국에 화웨이 보이콧을 강력히 요청했지만 영·독 모두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식이다. 또 이탈리아는 중국의 글로벌 교통·무역 인프라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 의사를 밝히고 나서 미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면 테러 방지 등에 필요한 정보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우방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공세로 수세에 몰린 중국은 화해를 원하면서도 반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화웨이는 최근 “재판 과정을 거치지 않고 벌칙을 부과하는 것은 미 헌법에 위배된다”며 자사 제품의 사용을 금지하는 미 정부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화웨이 미국 본부가 있는 텍사스 연방법원에 제기했다고 월스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나아가 캐나다가 멍완저우(孟晚舟) 화웨이 부회장을 억류하고 있는 것은 불법 감금이라면서 화웨이는 되레 캐나다 정부기관을 고소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것도 한국 기업에는 악재다. 중국은 과다부채로 경기를 떠받쳐 온 데다 미·중 무역전쟁까지 치르면서 급격한 내수 침체를 겪고 있다. 이 여파로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 6.5%보다 낮은 6.0~6.5%로 낮췄다. 이에 경기부양책으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대응 당시 투입한 규모와 맞먹는 700조원(4조1500억 위안)을 풀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장기집권을 여는 헌법개정안이 화두였다면 올해는 경제 회복에 초점이 맞춰질 만큼 중국의 경제 상황이 긴박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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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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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경제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트럼프의 ‘관세폭탄’ 정책에도 지난해 무역적자는 2008년 이래 최대(6210억 달러) 규모로 불어났다. 실업률은 3%대로 낮아졌지만 소비증가율이 둔화되고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오히려 늘어나 무역구조가 불안해지고 있다. 대중(對中) 무역적자는 4192억 달러로 전년대비 11.6% 늘어나 2년 연속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대중 무역공세에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트럼프가 무역전쟁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만 커진 셈이다.

이 와중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미국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25~203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앞으로 미 경제가 2.0~2.5%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중국이 5% 안팎의 성장을 지속하면 이렇게 될 것이란 중국의 본심을 드러낸 셈이다. 지난해 중국 GDP는 13조6000억 달러로 미국(20조5000억 달러)의 66.3% 수준이었다. 지난해 1년간 증가분만 한국 GDP 규모와 맞먹는다.

샹쑹쭤(向松祚) 런민(人民)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고속 성장 과정에서 높은 부채가 주목을 받고 있으나 중국의 부채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며 미국 추월론을 자신했다. 이에 대해 최근 국제분쟁 전문가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FT 기고문에서 “다들 중국이 곧 미국의 국력을 따라잡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장된 공포”라며 왜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꿰찰 수 없는지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는 늦어도 2040년경 경제 규모로는 중국이 미국을 앞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군사력을 비롯한 종합 국력은 다른 얘기라고 했다. 아시아에는 일본·인도·호주가 있어 힘의 균형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중국이 힘을 기를수록 국제 질서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도 과장됐다고 봤다. 중국은 이미 무역시스템은 물론이고 유엔평화유지군을 비롯한 국제질서 구축에 깊숙히 기여하고 있어 여기서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결정적 차이는 동맹국이다. 중국은 거의 없는데 반해 미국은 60개 이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패권 다툼은 이처럼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수출의존도가 중국에 대해 25%, 미국에 대해 13%에 달하는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처지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중국의 반도체 수요가 급감한 것도 경기 침체와 함께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여파가 영향을 미쳤다. 더구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Brexit)는 일단 6월 30일로 연기됐지만 혼돈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유럽경제의 기둥인 독일 경제의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면서 세계는 또다시 동시 불황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기업들은 각자도생의 자세로 불황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여 초격차의 기술로 무장해야 생존을 모색할 수 있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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