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위안 필요한 현대인 … 또다른 가족 된 반려 동·식물 /과거 사육의 대상 애완동물 개념 탈피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동반자 여겨 / 2018년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 25.1% / 1인 가구는 19% … 2인 가구보다 높아 / 인간·사회관계 스트레스에 심신 지쳐 / 심리적 위안·안락함 찾는 경향 나타나 / 식물·물고기·곤충까지 반려 개념 확대 / 관리 쉽고 상실감도 상대적 적어 인기
닷새만 봐 달라며 친구가 맡긴 반려견 ‘솜이’ 때문이었다. 아니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도, 별다른 관심도 없었던 최희정(28·가명)씨에게 두려움과 설렘의 중간쯤이었을 임무가 주어진 때는 2017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처음엔 걱정했던 것만큼 별다른 이벤트가 벌어지진 않았다. 때가 되면 사료를 주고,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고, 가끔 쓰다듬어 주는 게 다였다고 최씨는 기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무언가 차오르고 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닷새 동안의 임무를 마친 뒤, 빈방에서 옷에 붙어 있던 솜이의 털을 테이프로 떼어내던 중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최씨는 “자취생활을 오래 해서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신경을 써야 할 대상이 생겼고 그 대상과 알게 모르게 교감을 하면서 위로도 받게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얼마 뒤 유기견 보호소를 찾았다. 한참이나 눈맞춤을 했던 믹스견 ‘겨울이’를 입양해 3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고독한 현대인의 일상 속에 반려동물이 스며들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2018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25.1%였다. 1인가구 중 반려동물 사육 비율은 19%로 2인가구(17.5%)보다 높았다. 3인 이상 가구는 27.2%였다.
사진 = 게티이미지 |
◆애완동물→반려동물
가정에서 주로 키우는 개나 고양이는 과거 사육의 대상인 애완동물(pet) 개념에서 함께한다는 의미의 반려동물(companion animal)로 넘어왔다.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심리적인 안정감 및 친밀감을 주는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다. 친구나 가족과 같은 존재로 거듭난 셈이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반려동물 양육가구의 85.6%가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최근 반려동물과 관련한 기사 등 주제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2년엔 ‘애완동물’이라고 언급한 게 2083건으로 ‘반려동물’(1985건)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애완동물’ 주제어는 1907건인 반면 ‘반려동물’은 1만2401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점차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의미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는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인 콘라트 로렌츠 박사가 처음 제시한 뒤 점차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이전 학계에서 영어 단어(compaion)의 번역을 ‘동반’으로 할지 ‘반려’로 할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에는 소득 증대나 여가활동 중시 외에도 1인가구의 증가 등 사회적 변화에 따른 영향이 크다. 기존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에 대한 대안이라는 분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변화나 관심 증대는 경쟁 심화 등으로 각박해진 사회에서 심리적 위안과 안락함을 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투영된 것”이라며 “나홀로족 등이 늘어 가족이라는 개념이 옅어진 현대사회에서 반려동물을 돌보면서 스스로 가족을 형성해 보고자 하는 심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심리학)는 “종속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같이 막대한 심리적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에 지치게 되면서, 어느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반려동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반려견보다 독립적이고 양육에 대한 수고도 적게 드는 반려묘(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최근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세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접근 쉬운 반려식물도 각광
1994년 개봉한 영화 ‘레옹’에서 그가 들고 다니는 화분은 ‘씬 스틸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인청부업자인 레옹은 화분에 심어놓은 ‘아글라오네마’를 한손에 들고 다녔다. 그러면서 “가장 친한 친구”라고도 표현했다. 당시만 해도 갸우뚱했던 이 장면을 곧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려동물 외에도 식물이나 물고기, 곤충까지도 반려의 개념이 함께 쓰이고 있어서다. 반려식물의 경우 반려동물에 비해 호불호가 적은 점, 접근이 쉬울 뿐 아니라 관리·유지비용이 적게 들고, 상실감에 대한 충격이 덜한 점 등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반려식물 인구는 현재 약 200만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 유나연 사무과장은 “반려식물도 반려동물처럼 하나의 생명 개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고, 반려식물에서도 우울증이나 고독감 해소와 같은 심리적 안정이나 시각적 편안함 등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노년층이나 젊은 1인가구에서 반려식물에 대한 호응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시와 원예치료복지협회가 65세 이상 저소득 홀몸 어르신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려식물 보급 사업 결과에 따르면 참여자의 92%가 반려식물을 키우는 게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외로움 해소에 도움이 됐다는 답변도 93%에 달했다.
유 과장은 “단순히 식물만 나눠 주는 게 아니라 전문교육을 받은 원예치료사가 동행해 어르신과 함께 식물의 이름을 짓고, 의미나 동기를 부여하면서 정기적으로 관리까지 돕는다”면서 “어르신들이 먼저 돌아가신 배우자나 멀어지게 된 자녀들의 이름을 식물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을 돌봄이나 위안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정서적인 안정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 동물 돌보기만 해도 우울증 ‘쏙’ 사회성 ‘쑥’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치유의 영역까지도 확대되고 있다.
‘동물교감치유’(동물매개치유)로 불리는 대체요법은 사람과 동물의 유대를 통해 질병을 개선 및 보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농촌진흥청의 설명이다.
사진 = 게티이미지 |
반려동물 돌보기와 같은 활동만으로도 성취감이나 자아 존중감 향상, 스트레스 감소, 우울감 감소, 불안감 감소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지각 능력 및 사회성 향상, 집중력 및 가동성, 대화능력, 감정조절 능력도 개선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동물교감치유에는 주로 개가 활용되지만 대상에 따라 말이나 기니피그, 돌고래, 병아리, 금붕어 등 다양한 동물도 이용된다.
농진청이 2017년 초등학교 3곳과 특수학교 1곳에서 어린이들이 토끼를 돌보는 ‘학교깡총’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참여한 어린이는 이전보다 인성은 13.4%, 사회성은 14.5%, 자아존중감은 15% 각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정적 정서인 공격성과 긴장 수준은 각각 21.5%와 17.3%가 낮아졌다. 이외에도 사교성과 대인 적응성, 주도성도 각각 향상된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추가로 진행한 염소 돌보기 프로그램 ‘학교음메’에서도 어린이들의 생명존중의식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농진청은 설명했다.
농진청 관계자는 “수치화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함께 반려동물을 돌보고, 집도 청소하면서 책임감과 협동심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올해 진행하는 프로그램 결과까지 더해 종합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려동물 인구가 증가하면서 동물과의 정서적에 대한 관심도 많고 수요도 생각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동물교감치유의 저변은 넓지 않다”며 “앞으로 이와 관련한 현황 분석은 물론 동물교감치료 모델 및 프로그램, 매뉴얼 개발과 함께 관련 연구도 확대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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