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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김정은과 트럼프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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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하노이 회담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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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 간의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충격파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로 향할 때만 해도 회담을 낙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고위급 사전 실무 회담이 여러 차례 진행됐고 회담 첫날 만찬까지 했으니 다 준비된 합의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상황으로 전망됐습니다. 그러나 1박 2일 간 진행된 하노이 회담은 끝내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핵 폐기 원칙을 약속하고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북한은 핵을 다 내주고 체제 보장과 경제적 보상이 안 되는 상황을 두려워합니다. 미국은 제재 해제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 핵이 잔존하는 상황을 우려합니다.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2016년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취한 5건의 대북 제재 결의 해제를 맞바꾸는 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모든 핵시설을 완전 폐기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보상 보따리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의 핵시설뿐만 아니라 분강 지역 핵시설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탄두,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까지 염두에 두고 ‘다걸기(올인)’할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분강 핵시설은 아직까지 북한이 그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는 시설입니다. 더구나 이런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비핵화는 이번 정상회담 이전에 수차례 진행된 실무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범주였습니다.

영변만을 주는 것으로 이번 협상을 준비했던 북한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영변 핵 단지 폐기와 5건의 제재 완화를 우선적으로 시행하면서 상호신뢰를 더 쌓은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대응했다고 합니다. 김 위원장은 ‘단계별 접근’ 방식을,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 타결’을 고수했던 것이지요.

북한으로서는 선(先)폐기, 후(後)보상 방식을 믿기 어려울 겁니다. 북한은 영변 핵 단지를 최대한 비싼 대가를 받고 미국에 팔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영변 이외의 것들은 협상 테이블에 아예 올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관측됩니다. 영변의 값어치 정도면 5건의 제재 해제와 맞바꿀 만하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영변은 낡은 핵시설쯤으로 보고 새로운 핵시설에 주목했던 것이고, 북한이 요구하는 다섯 가지 제재야말로 군사적 제재 외에 핵심 사안들이기 때문에 이를 해제하는 것은 사실상 전면 해제와 같다고 인식했던 겁니다.

하노이 회담은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끝났지만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양국의 협상 전략과 심리까지 고스란히 드러났으니 수습하기가 더 쉬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듯 지금 북-미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오전 4시의 오경을 지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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