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팍팍해지는 서민의 삶]하위20% 소득 사상최대폭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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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타고 먼 아파트 단지까지 ‘원정 영업’을 다녀도 수입이 자꾸 줄어요.”
서울 강서구에서 세탁소를 하는 남모 씨(58)는 손님을 찾아서 전에는 가지 않던 다른 동네까지 발품을 판다. 지난해 초만 해도 한 달에 200만 원 남짓 벌었다. 여름부터 손님이 줄더니 지금은 생계가 위협받을 지경이다. 남 씨는 “발버둥을 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작년 4분기(10∼12월) 하위 20%의 소득이 역대 최대 폭으로 떨어지면서 양극화가 심해진 것은 남 씨처럼 영세 자영업자의 수입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이 많아진 때문이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고 복지가 강화됐다지만 주 수입이 급감하는 상황에선 정부 지원도 큰 도움이 못 된 셈이다.
○ 고용 참사로 심해지는 소득 양극화
지난해 취업자 증가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이후 처음 1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작년 실업자 수는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107만3000명.
고용 참사로 직격탄을 맞은 쪽은 저소득층이었다. 지난해 4분기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저소득 가구의 취업 가구원 수는 0.64명으로 1년 전(0.81명)보다 감소했다. 저소득가구 중 가구주가 무직인 비중도 55.7%로 1년 전보다 12.1%포인트 늘었다. 2017년 4분기 68만 원 선이었던 근로소득은 작년 4분기 43만 원으로 40% 가까이 감소했다.
정부는 실업급여 지급과 기초연금 등으로 저소득층 소득을 보전했지만 주 수입원이 사라지거나 감소하는 상황에 대처하긴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4분기 하위 20%에 지급된 공적이전소득은 1년 전보다 28.5% 증가했다. 2017년 4분기(6.5%)보다 증가 폭이 커졌지만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모두 감소하면서 저소득층의 생활고가 심해졌다.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저소득층도 세금과 이자 등을 빼면 쓸 돈이 없다. 21일 오전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만난 이모 씨(32)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버는 월급 180만 원 중 160만 원을 이자로 낸다”고 말했다.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지만 소득이 적고 신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중은행들은 대출을 외면했다. 그 대신 이자가 비싼 저축은행에서 6000만 원을 빌려 급한 불을 껐지만 이자 낼 걱정이 새로 생겼다. 이 씨는 “간신히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손에 쥘 수 있고 저축 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4분기 하위 20%의 처분가능소득(세금 등을 뺀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1년 전보다 8% 넘게 감소했다.
○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점점 추락”
이런 소득 감소는 하위 20% 가구뿐 아니라 이보다 좀 더 수입이 많은 소득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에서 악기점을 운영하는 강모 씨(44)는 과거 매달 200만∼300만 원의 소득을 올렸지만 지금은 월평균 수입이 140만 원을 조금 넘는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밀려오고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악기점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뜸해진 것이다. 강 씨는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점점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하락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4분기 하위 20∼40%의 소득은 1년 전보다 4.8% 줄었다. 이 같은 감소 폭은 작년 2분기(―2.1%)와 3분기(―0.5%)보다 훨씬 크다. 특히 자영업자가 벌어들이는 사업소득이 18.7%, 이자와 배당금 등 재산소득이 43.8% 감소했다. 통계청은 “하위 20∼40% 가구에 있던 자영업자의 여건이 나빠지면서 하위 20%로 내려앉은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고소득 가구의 수입은 과거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 상위 20%의 소득은 1년 전보다 10.4%, 근로소득은 14.2% 늘었다. 통계가 집계된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화장품 무역업을 하는 최모 씨(42)는 “2017년에는 한 달에 700만 원가량을 벌었지만 지난해에는 수출이 잘돼 월수입이 800만 원으로 늘었다”고 했다.
고소득 가구는 국민연금과 아동수당 등으로 받는 공적이전소득도 늘었다. 지난해 4분기 상위 20% 가구가 받은 공적이전소득은 1년 전보다 52.9% 증가했다. 통계청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수혜자가 증가했다”면서 “상위 소득 가구에 아동수당 수혜 아동도 상대적으로 더 많다”고 설명했다.
○ “무거운 책임감 느낀다”면서 대책 못 내는 정부
정부는 21일 긴급 관계장관회의 직후 배포한 자료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지만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분배가 악화된 데 대해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과 취약계층 고용 부진 등을 이유로 들었다. 기재부는 “하위 20% 가구 가운데 근로 능력이 취약하고 소득 수준이 낮은 고령 가구 비중이 늘었다”고 했다. 저소득층이 많이 취업하는 임시·일용직에서 일자리가 많이 줄어든 점도 원인으로 꼽았다. 그동안 임시·일용직 감소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정부는 4월 기초연금 인상과 근로장려금(EITC) 확대 등 소득지원책이 본격화되면 저소득층의 수입이 다소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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