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장(2등급) 받은 유일 여성 독립운동가
3·1운동 직후 독립운동하려 이주…당시 47세
"역사 기록 많지 않아 아쉬움…발굴 더해야"
"여성에 대한 한국사회 무관심, 불평등 작용"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2.8 독립선언 100주년인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배재어린이공원에 설치된 항일독립운동여성상 모습. 2019.02.08. dahora83@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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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김은비·이창환 수습기자 = 조국 독립을 위해 손가락 3개를 자르고 일본 수뇌부 암살에 몸을 던진 남자현(1872~1933). 조국의 후손들은 그에 대해 그저 무심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 속 안옥윤(전지현)의 모티브가 남자현이란 사실이 퍼지자 비로소 그의 이름 석 자가 서서히 알려졌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3·1절 99주년 기념사에서 남자현을 언급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이처럼 서거한 지 반세기를 훌쩍 넘어서야 관심을 받게 된 남자현은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로는 유일하게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은 인물이다. 대한민국장(1등급)을 받은 열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중근, 윤봉길, 김구, 안창호 등으로 모두 남자다.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에겐 독립장(3등급)이 수여됐다.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남자현이 공로를 인정받은 데는 무기를 들고 직접 무력항쟁에 나선 점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여성으로서 드물게 직접 총을 써서 무장활동을 했다. 또 중국 하얼빈에서 잡혀 옥중에서 단식 투쟁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며 "이런 점 등이 높이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남자현을 '전율할 노파'라고 칭했고, 독립군 사이에서는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불렸다"며 "남자가 하기도 힘든 무장투쟁을 한 근대 한국의 호걸"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우정사업본부는 지난 2016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우표를 발행했다. 왼쪽 남자현. 2016.05.31. (사진=우정사업본부 제공) photo@newsis.com |
신영숙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은 "무장투쟁, 의열투쟁을 그 시대 여성이 앞장서서 했단 건 대단히 훌륭한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자현이란 인물을 속속들이 알기엔 남겨진 사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 위원은 "남자현 열사의 대단한 활약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고문받을 때 일본 경찰이 쓴 조서가 몇 개 남아있고 조선중앙일보 등 신문 기사 3, 4편이 남아있다"며 "이렇게 연구가 안 되니 널리 알릴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신 위원장은 "남자현은 많이 알려진 다른 여성 독립투사들처럼 이화학당이나 정신여학교 같은 학교 교육과는 거리가 있었다. 알리는 역할을 해줄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더 알려지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만주로 거처를 옮겼을 당시 남자현의 나이가 이미 47세였다.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농어촌을 순회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며 여성 계몽 운동을 했다"며 "남성이 독립운동을 주도한 시대상에서 여성이 이런 활동을 한 건 대단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가 펴낸 <독립운동사>는 남자현의 교육 활동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23세에 청상과부로 3대 유복자를 키우면서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투쟁에 앞장서는 눈부신 활동을 하는 가운데 북만주 일대 12개소에 교회를 세우고 10여개소에 여자 교육회를 설립해 여성계몽과 해방운동에 전력했다.
일선 독립투사 대부분이 교육에 종사했던 것을 보더라도 당시 민족운동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민족교육이었다. 민족교육 육성을 위해 특히 과부들의 놀라운 장거가 있었던 것은 망부(亡夫)의 비애와 망국(亡國)의 비애를 스스로 극복해 자신의 갱생과 민족갱생의 길을 동일하게 찾으려는 강한 의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단식한지 9일만에 인사불성되어 출감, 보석출감한 武藤대장 謀殺犯, 신경 남자현의 근황> 조선중앙일보 1933년8월26일 기사. (제공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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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최근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 생겨난 관심을 계기로 그동안 묻혀온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위원은 "그간 우리 사회가 여성 독립운동가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며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300명 수준으로 전체 1만5000명의 3%에 못 미친다"며 "여성 독립운동가가 얼마나 발굴이 안 됐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남자현의 인지도가 낮은 데는 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관심과 불평등이 작용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 교수는 "후손들이 남자현 같은 독립운동가를 알리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했다. 이번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시대의 숨은 영웅들을 발굴해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이상국 <남자현 평전>(2018), 강윤정 <여성독립운동가 南慈賢의 항일투쟁>(2018),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 제10권>
sout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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