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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How old are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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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송길영 Mind Miner


한해가 시작하는 날도 두번에 걸쳐 기념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나이 또한 한가지 기준이 아닙니다. 태어나며 주어지는 한 살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이미 세어집니다. 반면, 법률적 나이는 태어난 날로부터 정확히 365일을 채워 보냈다는 ‘찰 만(滿)’을 붙여 표현됩니다. 그리고 새해와 함께 늘어나는 통상의 나이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얻어집니다. 12월 31일 저녁에 태어난 대학시절 친구가 태어나자마자 몇시간 만에 두살의 나이를 먹었었다 자랑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여기에 3월에 시작하는 한국의 학령기준은 술 마실 때마다 언쟁을 만들어내는 “빠른 년생”이라는 기괴한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학교를 함께 다닌 1월 생 친구에게 빠른 년생의 기억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합니다. 태어난 해가 달라 친구들로부터 형님이라 부르라는 짓궂은 농담을 수십년째 듣는다는 것입니다. 주민등록번호의 연도를 나타내는 숫자는 다르지만 입춘을 기준으로 나눈다는 12지의 띠는 같으니 형님이 웬말이냐고 화를 내던 친구의 말을 당시엔 웃어넘겼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당하는 입장은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니었겠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는 태생적인 것으로 차별을 한다면 평등한 민주사회에 산다 믿고 있는 우리의 가치관에 반하는 것이죠.

어릴적 만화의 철부지 주인공은 떡국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몇 그릇이고 먹어치우며 빨리 나이 들려 노력했습니다. 나이가 어린 쪽이 많은 쪽을 공경해야 한다는 뿌리깊은 우리의 이 관념은 교통사고의 원인을 따지는 순간에도 상대 운전자와 언쟁이 커지면 결국 상대가 몇살인지를 묻는 지극히 한국사회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나이가 자랑스럽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쌓아온 연륜이 지혜와 비례하는 것만 같아도 막상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과거 배운 방법은 새로운 세상에선 무효하기도, 익숙해진 관행은 구습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빠른 년생으로 그토록 억울해하던 친구는 나이 많은 순으로 직장에서 나가야하는 전혀 명예롭지 않은 명예퇴직 대상에 오르지 않아 기뻐합니다. 마치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인생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그 합은 누구에게나 비슷비슷한 걸까요? 그것보다 몇살인지 전혀 묻지 않고 어느 누구나 대등하게 소중한 “위 아래가 없는 사회”가 더 멋지진 않을까요?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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