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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취재일기] ‘걸그룹 미모 할당제’ 역풍 맞은 여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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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여성가족부가 최근 여론을 들끓게 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결국 수정하기로 했다. “정부가 걸그룹 외모까지 규제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탓이다. 문제의 안내서는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돌 그룹을 지양해야 할 ‘외모 획일화’의 사례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고 지침을 제시했다. 연예인의 외모나 대중의 취향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문제가 된 안내서의 바탕이 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미디어 외모·성형 재현에 대한 가이드라인 연구’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일리있는 부분도 있다. 그 일부다.

#“같은 민족 다른 느낌”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자 아이돌과 개그맨의 얼굴을 한 화면에 담으며 이런 자막을 냈다. ‘얼굴천재’라 불릴만큼 잘생긴 아이돌을 우월하게 그리면서 개그맨의 외모를 희화화했다. 외모를 개그의 소재로 사용했다.

#연예인들의 실제 다이어트 과정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에서 날씬한 여자 연예인이 체중을 더 줄이겠다고 나선다. 허리 둘레가 27인치 였던 그는 극단적인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이를 23인치까지 줄인다. 방송은 그의 마른 몸매를 칭송한다.

중앙일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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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건 사실이다. 성장기인 초등학생이 다이어트에 매달리고, 화장품으로 얼굴을 치장하는 모습이 흔히 눈에 띌 만큼 그 폐해도 작지 않다. 하지만 옳은 소리라도 정부가 나설 게 있고, 나서지 않아야 할 게 있다. 획일화된 외모를 지양하라면서 ‘외모 가이드라인(지침)’을 제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가부는 19일 밤 설명자료를 내고 “정부는 우리의 일상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체가 의도치 않게 인권을 침해하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보도나 프로그램 제작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을 안내해왔다”고 설명했다. 강제할 권한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무리 강제성이 없다해도 정부가 지침을 내놓으면 민간에선 ‘규제’로 읽힌다. 여가부의 설명은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전문가들이 심의해서 구체적인 문제 사례를 지적했다면 어땠을까. 여가부의 헛발질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상의 없이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에 국민연금 투자를 늘린다고 했다가 거센 반발을 샀다. 취지가 좋다고 모두에게 좋게 받아들여지는건 아니다. 계속되는 여가부의 아마추어리즘이 걱정된다.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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