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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덤덤하고 따뜻하게 닫힌 문을 여는 드라이아이스같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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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 2번째 시집 ‘한 사람의…’

경향신문

“당신이 무얼 먹고 지내는지/궁금합니다/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혼자 밥 먹는 일//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혼자 밥 먹는 일//그래서/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심야 식당’)

한밤중 국숫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의 구부정한 등을 보며 누군가의 안녕을 궁금해하기, 버스 안에서 모르는 사람을 지켜보다 마음속으로 혼자 인사를 건네기. 박소란 시인(38·왼쪽 사진)의 두 번째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창비·오른쪽)엔 이처럼 외로워하고 슬퍼하면서도 타인을 향해 조심스레 건네는 다정한 인사와 같은 시편들이 실려 있다.

박소란의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2015)은 “사회적 약자와 시대의 아픔을 개성적 어법으로 끌어안았다”는 평과 함께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며 호평받았다. 지금까지 8쇄를 찍으며 독자들로부터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펑펑 울기 위해 쓴 시”라는 시인의 말처럼 첫 시집엔 슬픔을 꾹꾹 눌러담은 시편들이 수록됐다면, 두 번째 시집에선 조금 덤덤해지고 따뜻해진 슬픔이 느껴진다.

“가까운 시인이 ‘드라이아이스 같다’란 말을 해줬는데, 그 말이 와닿았어요. 덤덤해지고 차가워졌지만 만지면 화상 같은 동상을 입는다는 점에서요.”

이번 시집도 외롭고, 슬프고, 죽음과 가깝다.

하지만 그것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인이 슬픔 안에서 머물지 않고 타인과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슬픔을 저지른 것인지/슬픔은 왜//또 끝끝내 아름다워지려 눈물을 감추는 것인지”(‘말해보세요’), “불을 끄려면/불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고”(‘불이 있었다’)와 같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설적 순간들이 시집에 가득하다.

시집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문이다. 문은 단절과 폐쇄와 동시에 개방과 연결을 의미한다. 박소란은 “한 사람의 닫힌 문 앞에 선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닫혀 있는 문 때문에 문 저편의 사람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순 없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인해 문 이편에 있는 사람이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박소란은 시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에서 윤동주·김수영과 함께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건물마다 스민 그 빛을 덩달아 환해진 당신의 뒤통수를 몰래 훔쳐봅니다…우리는 헤어집니다/단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이/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내 이름은 소란입니다”(‘모르는 사이’)

<한 사람의 닫힌 문>은 박소란이 우리에게 건네는 인사 같은 시집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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