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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고요한 슬로시티에 숨겨둔 명가의 개인 셀러 `카스텔로 델라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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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카스텔로 델라 살라의 와인 `브라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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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와인기행-75] 와인 애호가들이 종종 그려 보는 꿈이 있다. '만약 와이너리를 소유할 수 있고 개인 셀러도 만들 수 있다면, 전세계 어느 곳이 좋을까?' 헛된 상상을 하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여러 와이너리를 소유한 세계적인 와인 명가들의 개인 셀러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와인 명가 안티노리(Antinori)는 슈퍼 투스칸을 생산하는 테누타 티냐넬로(Tenuta Tignanello)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정석인 안티노리 키안티 클라시코(Antinori Chianti Classico)를 비롯한 여러 와이너리를 토스카나 지방에 소유하고 있다. 이 가문 사람들이 종종 휴가를 보내는 곳은 토스카나 남쪽 움브리아(Umbria) 지역에 있는 그들 소유의 또 다른 와이너리다. 그곳에 이 가문 사람들이 수집하는 보석 같은 와인들을 모아둔 개인 셀러도 있다.

움브리아주(州)의 오르비에토(Orvieto)시는 이탈리아반도의 한가운데 콕 박혀 있는 산림지대여서 '초록 심장'이라 불린다. 고대와 중세의 유적이 남아 있는 오솔길이 소란스러운 관광지와 달리 고즈넉해서 좋다. 가업을 이어오는 작은 가게와 식당들에서는 저마다의 비법으로 만든 고기, 치즈, 파스타 등을 선보이고, 비옥한 포도밭에서는 트레비아노, 샤르도네 등의 품종으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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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와 다진 소고기로 맛을 낸 이탈리아 중부지방의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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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에토 외곽에 안티노리가 소유한 와이너리 카스텔로 델라 살라(Castello della sala)가 있다. 직접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고요한 시골에 숨어 있는 14세기의 성(城)이었다. "이곳의 토양은 퇴적된 화산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포도가 아주 잘 자라는 흙이죠.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에 의해 포도가 재배되기 시작했고, 중세시대에는 교황과 왕과 귀족에게 공급됐습니다." 와이너리 안내자가 지도를 펼쳐 보이며 설명했다.

와이너리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몇 해 전까지 안티노리의 사장이었던 피에로 안티노리의 개인 저장고도 볼 수 있었다. "피에로는 2017년 봄에 가문의 26대손인 그의 장녀 알비에라 안티노리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는데, 그의 가족들은 지금도 종종 이곳에서 함께 식사하거나 휴가를 보냅니다"라고 안내자는 덧붙였다.

중세시대 요새 아래 조성된 셀러답게 두터운 벽에 의해 적정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고, 구불구불한 동굴 같은 공간에 안티노리의 보석 같은 와인을 포함한 전세계 명산지의 와인들이 간직돼 있었다. 둘러보는 내내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근사한 것이 많았고, 전설적인 올드 빈티지 와인도 물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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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안티노리의 개인 셀러에 보관된 와인 `체르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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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를 둘러본 후에는 카스텔로 델라 살라의 와인들을 맛봤다. 해발 200~450m 언덕에 자리한 포도밭에서 트레비아노, 그레케토,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세미용 등 화이트 와인 품종을 주로 키운다고 와이너리 안내자는 설명했다.

먼저 샤르도네 품종 100%로 만든 브라미토 2016(Bramito 2016)을 맛봤다. 각종 햄과 치즈를 곁들이자 와인의 산미가 음식의 짠맛을 부드럽게 완충시키며 잘 받쳐줬다. 이어서 샤르도네와 그레케토로 만든 '체르바로 델라 살라 2015(Cervaro della Sala 2015)'도 시음했다. 앞서 마신 것보다 좀 더 유연하면서도 힘찬 물결이 입안을 채웠다. 고기를 다져 넣은 진한 토마토소스 파스타와 궁합이 좋았다.

카스 텔로 델라 살라는 대중에 개방돼 있지 않지만, 그들의 와인은 이 지역 레스토랑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움브리아는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할 때 들르면 좋다. 두 도시를 잇는 기차에 탔을 때 동쪽으로 펼쳐지는 전원 지역이 바로 움브리아다. 목가적인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내리는 여행자들이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 없다. 토스카나에 뿌리를 둔 안티노리 사람들이 개인 셀러를 조성하고 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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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영 여행작가]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여행, 음식, 와인을 담당했던 것을 계기로 여행작가가 됐다. 가까운 미식 여행지 후쿠오카를 다룬 '리얼 후쿠오카'를 썼으며, 유럽 맛의 도시 바르셀로나 여행서 출간을 준비 중이다. KFM 라디오 '반승원의 매일 그대와' 여행 코너에서 매주 세계 도시를 소개하고 있고, 그 밖에 여행 강의나 토크 콘서트도 한다. 매경 프리미엄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연재와 기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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