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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허술한 당직체계…병원은 ‘쉬쉬’ 정부는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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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 문제 다시 주목

수익성 밀려 ‘인력 부족’…“예산 확충 적극 나서야”

이송 전 ‘환자분류체계’는 복지부·소방청 ‘기싸움’

경향신문

이국종 “응급헬기에 윤한덕 이름 새길 것” 10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에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향후 응급의료헬기 표면에 고인의 이름을 새겨넣겠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고인의 바람이었던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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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사망한 뒤 의료계에서는 고인이 생전에 개선하려 한 국내 응급의료 체계의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심장이 멈춘 뒤 4분, 호흡이 멈춘 뒤 5~10분, 출혈이 시작된 지 1시간 이내를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응급실을 찾아도 치료받기 힘들 때가 많고, 다른 병원으로 다시 이송되며 시간이 길어진다. 중증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는 시간을 보면 2015년 기준으로 5시간30분이었다. 정부가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응급의료기관 등을 늘리며 소요시간은 다소 줄었으나, 2017년 기준으로 약 5시간(306분)에 달했다.

응급 이송이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응급실에 사람이 붐비는 데 있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전국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57개와 지역응급의료센터 131개, 지역응급의료기관 247개가 있다. 이 중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상급 종합병원 등)의 경우 중증 응급환자 치료에 집중해야 하지만,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로 붐비는 게 현실이다. 정작 중증 환자는 골든타임을 넘기며 다시 이송될 경우가 많아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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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환자 스스로나 이송요원 등이 경증과 중증으로 분류해야 하며, 증상이 가볍다면 지역응급의료기관을 우선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TAS) 분류체계가 만들어졌지만 119 이송단계부터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응급의료계 한 관계자는 “소방청은 보건복지부나 의료계의 통제를 받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이송 전 KTAS를 개발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소방청의 협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환자가 적정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경우도 있다. 김윤 서울대 교수는 “중증 외상환자의 경우 중증외상센터에 우선 이송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 중 60%는 센터가 아닌, 가까운 병원에 우선 이송되고 있다”고 말했다. 119 입장에서는 중환자를 먼 곳으로 데려가다 사고가 발생하면 곤란하기에 가까운 병원에 우선 데려다놓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응급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떠도는 또 다른 이유로는 병원들의 인력 부족과 허술한 당직체계의 문제도 있다. 많은 병원들은 수익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응급치료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응급환자를 봐야 하는 당직체계도 제대로 서 있지 않다. 관련 법은 세부 분야까지 정해 의사들이 당직을 서도록 규정하지만 현실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김 교수는 “이제까지 의료계에서는 ‘의사가 적어 어쩔 수 없다’며 당직체계의 문제를 쉬쉬해왔고, 정부도 의사들의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다”며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며 인력이 부족하다면 얼마나 더 필요한지,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이 생전에 해온 ‘전원(轉院) 조정’ 작업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현재 응급환자가 이송된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중앙응급의료센터 전원조정센터가 나서 이들에게 필요한 병원을 찾고 있다. 과거에 이 작업은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 전화 등을 통해 이뤄졌지만, 119로 통합된 뒤에는 그 기능이 크게 줄어들어 전원조정센터에 기대고 있다. 윤 센터장도 홀로 수십통씩 전화를 돌려가며 치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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