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은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입니다. 종전의 최종 완성을 위해서는 전쟁 당사자인 남·북·미·중 4국이 참여하는 휴전협정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법적 행위가 필요합니다. 종전선언 그 자체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자칫 평화협정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경우 유사시 군사적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北, 70년대부터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주장
북한은 1970년대부터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72년 남북한은 ‘7.4 공동성명’을 통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에 합의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이 위원회의 2차 회의에서 북한은 평화협정 토론을 요구했는데, 이를 남한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남측이 발표한 ‘평화통일선언’에는 평화협정이라는 말이 없음에도 북한은 몇 시간 뒤에 발표한 ‘조국통일 5대 강령’에 제1의 강령으로 남북 간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와 긴장상태 완화를 위한 방안으로 평화협정을 포함시켰습니다.
당초 북한의 요구는 남북한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12월 당시 김일성 주석은 미국과 북한이 체결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1974년 3월 2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북한은 평화협정에 포함돼야 할 사항으로 △북미 상호 불가침 조약 △한반도에 대한 군수물자 반입 중단 △남측의 대북 전쟁도발 방지 보증 △한반도 문제에 대한 내정간섭 중단 △유엔군사령부 해체 △모든 외국군 철수 등을 제시한바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미 고위급 회담 대표단을 만나 워싱턴 방문 결과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지난 달 24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사진이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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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전협정 무효화도 평화협정 체결 노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전협정이 무력화되면 새로운 평화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정전협정에 따라 구성된 중립국 감독위원회로부터 체코 대표단과 폴란드 대표단을 철수시킴으로써 정전협정의 중요 기구 중 하나인 중립국 감독위원회를 사실상 무력화시켰습니다. 또 19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사령부 측 수석대표에 한국군 소장이 임명되자 북한은 정전협정의 핵심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5월에는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체할 기구로 일방적으로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한바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2012년 7월 12일 제19차 아세안지역포럼 연설에서 북한의 박의춘 외무상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강조하고, 같은 해 7월 25일에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직접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1월 14일 북한 외무성은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평화협정을 연계하는 비망록을 발표했고, 2015년 10월 1일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도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데 동의해 나선다면 공화국 정부는 조선반도에서 전쟁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건설적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北, 판문점선언 이후 줄곧 종전선언 요구
남북 정상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선언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다”며 “정전협정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고 합의했습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지속·안정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습니다. 문구 자체에는 종전선언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2018년 7월 6-7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때 북한이 종전선언 문제를 집중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에 평화체제라는 용어에 종전선언이 포함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북한은 2018년 8월까지도 종전선언 체결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했습니다. 2018년 8월 21자 북한 노동신문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종전선언의 채택을 미룰 수 없다고 주장했고, 8월 17일 노동신문 논평에서는 남한 국민과 해외동포들에게 종전선언 채택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독려한바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결정적인 조치를 먼저 시행하지 않을 경우 종전선언에 합의하기는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고, 이에 북한은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2018년 10월 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종전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대가가 될 수 없다”며 “북한은 종전선언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평 이후 북한은 종전선언 관련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北, 2차 북미회담 앞두고 종전선언에 ‘심드렁’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대화가 재개되면서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되려 북한이 심드렁한 모습입니다. 종전선언이 더 이상 매력적인 카드가 아니라는 뉘앙스 입니다. 실제로 남북간에는 이미 종전선언을 한 것과 마찬가지의 관계가 형성돼 있습니다. 미국과도 잇따른 정상회담과 실무 접촉 등을 통해 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한 모양새입니다. 이에 따라 종전선언은 건너뛰고 곧바로 평화협정 체결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북한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또 주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종전선언은 6.25전쟁이 종결됐다는 정치적 선언인데 반해,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약속입니다. 6.25 전쟁으로 설치됐던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히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남북 군사당국은 ‘9·19 군사 분야 합의서’를 통해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와 자유 왕래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한과 유엔군사령부 간 협의 과정에서 북측이 앞으로 설립될 JSA 공동관리기구에서 유엔군사령부는 빠지라고 요구하고,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에 근거한 비무장지대(DMZ)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해 11월 13일 판문점에서 3자 협의체를 연 이후 회의는 중단된 상태로 JSA 자유왕래가 언제쯤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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