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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총 107조원. 국민 혈세 낭비를 막고 효율적 사업 집행을 위해 도입된 예타 제도가 껍데기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예타는 대규모 신규사업의 예산편성 이전에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따져보기 위한 취지로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도입됐다. 예타를 거친 767건의 사업 중 36.7%(282건)가 '사업 부적합'이라는 결과를 받았고 이로 인한 국고와 지자체 예산 절감 효과는 141조원에 달했다.
예타가 모든 사업에 필수는 아니다. 국가재정법은 지역 균형발전과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업에 예타 면제를 규정하고 있다. 공공청사와 교정시설, 초·중등 교육시설, 문화재 복원, 국가안보, 재난복구 등 경제성과 무관해도 '필요한 사업'은 제한적으로 면제권을 얻는다.
하지만 그 이외의 면제는 지자체의 요구에 대해 '부적합'이라는 간접적 행정이 아닌 '면제'라는 수단으로 직접 행정의 대상이 된다. 정무적인 목적이나 경기부양을 위해 면제권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을 부인하기 힘든 점이 분명히 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 역시 최근 "가능한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할 것(홍남기 부총리, 28일 전국세무관서장회의)"이라고 밝혔다. '예타 면제'를 '한국판 뉴딜'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행 예타 제도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을 살펴보는 경제성 분석에 가장 높은 가중치를 둠으로써 지역균형, 정책적 고려는 뒤로 밀렸다. 지방자치단체에선 예타를 신청해놓고 2~3년 기다리는 사례가 허다해 사업이 지연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천문학적인 혈세를 논란이 될 만한 사업에 쏟아부을 때가 문제다. 예타 면제는 정치권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부양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여파로 경기침체가 가속화 하자 대운하사업의 이름만 바꾼 4대강 사업을 행정권으로 밀어붙였다.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을 중심으로 보 16개와 댐 5개, 저수지 96개를 건설하는 사업은 모두 예타 면제 승인을 받았다. 정부 재정만 22조원이 들어간 초대형 사업에 겨우 4년이 걸린 비결은 타당성 조사를 건너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간(2008~2012년) 중 예타면제 사업은 총 88건(60조원)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2년 동안 예타를 면제한 사업이 38건, 총 29조5927억원에 달한다. 29일 발표되는 예타 면제 규모가 최대 42조원에 달할 거라는 전망을 감안하면 문 정부는 역대 최대 면제권 활용을 기록할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2조원)과 박근혜 정부(23조원) 시절의 면제 사례를 더하면 약 114.5조원 규모의 사업에 예타 없는 혈세가 투입된 셈이다.
이에 대해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예타는 조사 기간이 너무 길고 평가가 경제성에 치우쳐 있어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예타 조사 기간은 신청 지자체가 조사 도중 예타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사업 계획을 변경하면서 늘어지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박경담 기자 damda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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