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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암사역 칼부림’ 현장 지킨 숨은 의인…“사람 얼굴이 저렇게 밟혀서 되겠나” 한달음에 나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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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긁혀 부상입고도 경찰 올때까지 끝까지 중재나서

-“방관한 시민들, 경찰관 개인 향한 비난보단 시스템 보완 바라”

헤럴드경제

[‘암사동 칼부림’ 현장에서 중재에 나섰던 시민 이명은(28) 씨. 사진=본인제공]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선생님, 진정하세요. 진정하시고 나오세요”.

지난 13일 오후 7시께 서울 지하철 암사역 3번 출구 앞 인도에서 발생한 일명 ‘암사역 칼부림’ 사건은 우리사회에 두번의 실망감을 안겼다. 칼에 찔린 피해자를 지켜보고만 있던 주변 사람들에 한번, 테이저건조차 제대로 쏘지 못하는 경찰의 미숙한 대응에 두번.

하지만 아수라장 같은 현장에서도 자기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했던 숨은 의인은 있었다. 그 주인공은 직장인 이명은(28ㆍ사진)씨다. 이 씨는 칼을 든 범인에게 달려가 경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었다.

사건 당일 이 씨는 단골 빵집에서 크림빵을 사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평범한 퇴근길이 될줄 알았던 그날, 이 씨는 멀리서 웅성거림을 들었다. 웅성거림은 한 상점 앞에서 쓰러져 누군가가 맞고 있는 곳에서 들려왔다. 암사역 칼부림 사건의 피해자인 박모(19)군을 한모(19)군이 폭행 하는 상황이었다.

“진정하세요. 흥분하신 것 같으니 진정부터하세요“. 이씨는 한달음에 달려가 칼을 든 한군을 제압하려 했다. 이씨를 행동에 나서게 한 것은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었다. 그는 “길바닥에 쓰려져 얼굴을 밟히는 피해자를 보곤 ‘다른 곳도 아닌 사람 얼굴을 저렇게 밟으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몸부터 움직였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싸움이 나면 항상 가서 말리는 ‘오지랖’에다 복싱 경력도 7년이나 되는 이 씨지만 칼까지 들고 싸우는 현장은 두려웠다. 한군 손에서 칼을 빼앗아보려 했다가 손끝에 부상도 입었다. 그래도 경찰이 올때까지는 버텼다. 이씨는 “경찰이 오기전이라면 진정이라도 시켜보자”는 생각으로 시간을 끌었다.

혼자 나선 이씨에겐 10분도 1시간 같았다. 당시 현장에는 이 씨를 제외한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것은 이 씨 혼자였다. 현장을 촬영한 영상엔 상점 밖에서 유리문을 열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버티고 선 상점 내부 손님들의 모습만 찍혔다. 박씨는 그 상점의 유리문 너머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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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사진은 13일 오후 7시께 서울 지하철 암사역 3번 출구 앞 인도에서 박모(18) 군이 쓰러진 채 한모(18) 군에게 폭행 당하는 모습. 두번째 사진에 나타난 뒷모습이 이를 말리려 달려가는 이명은(28) 씨다. 사진=목격자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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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이 공개된 후 방관하는 시민들을 향한 비난도 많았다. 그러나 이씨는 “칼 든 사람을 보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며 ”저처럼 행동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행동하지 않은 분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씨는 현장에서 적지 않은 시민들이 도움을 주고 싶어했던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학생 하지마 하지마‘하며 가해자를 말리던 아주머니 한분도 계셨고 칼을 보고 발길을 돌리긴 했지만, 싸움을 말리려고 다가왔던 아저씨도 한분 계셨다”고 말했다.

그가 유일하게 아쉬움을 드러낸 대목은 경찰의 미숙한 대응 시스템이었다. 이 씨는 “경찰만 오면 다 해결될거라 믿고 기다렸는데, 뒷걸음질 치는 모습에 실망도 했다”며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오히려 못 나서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 출동한 경찰 개인을 비판하기보다는 테이저건의 한계를 시스템적으로 보완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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