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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아침에 출근하면 출입증 반납하라고 해요"…사각지대 놓인 간접고용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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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간접고용 쟁점과 노동실태' 보고서

고용불안·노동조건 차별 커

노조 가입은 사실상 불가능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한 달 전에 공고? 그런 것 없어요. 오늘 아침에 딱 가면 출입증 반납하라 그래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협력업체에 대응할 수단도 갖지 못한 채 차별적인 노동조건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와 실질적으로 일하는 업체의 사업주가 서로 고용관계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간접고용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정책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간접고용 쟁점과 노동실태’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이번 보고서 작성을 위해 제조업·유통업 등 간접고용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분야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이 연구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간접고용 노동자가 노동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데일리

간접고용 쟁점과 노동실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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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간접고용 노동자가 느끼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업체변경에 따른 고용불안이었다. 보통 자동차·조선·철강 등 제조업의 경우 일감이 부족해지거나 물량이 떨어지면 사내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노동자는 해고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의 변경은 별도 공지 없이 통보하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간접노동자는 고용안전에 대해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철강회사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9년 동안 6번 협력업체가 바뀌었고, 이번에도 1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나가라고 했다”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사유도 없고 원청에서 나가라고 하면 그냥 통보만 받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조선회사 사내하청 노동자는 “나가라면 나가는 게 끝”이라며 “임금이나 퇴직금을 전혀 못 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토로했다.

또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불합리한 차별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정 부연구위원은 “정규직 노동자는 노사합의에 의해 시간당 정해진 일의 양이 있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는 정해진 시간 안에 주어진 일을 해내야만 하는 구조로 노동의 양이 달랐다”며 “고용승계가 이뤄지더라도 근속은 인정되지 않아 매년 임금이 인상되는 구조를 가진 정규직과 달리 사내하청은 일당제에 가까운 임금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노조 설립 등은 묘연한 일이라는 게 이번 면접에 참여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노조활동을 하면 계약을 해지 당하거나 블랙리스트 등을 통해 특별관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 금속노조 간부는 “어떤 협력업체가 비정규직 지회에 많이 가입했다고 하면 그 업체는 도급 재계약을 못 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그 업체 사장들은 노동자를 불러 회유하고 협박하게 된다”며 “‘네가 노조 가입한 것 때문에 나 포함해 업체 직원들 다 밥줄 끊긴다’는 식으로 회유하면 노조를 못한다”고 설명했다.

한 조선사의 경우 사내하청 간접고용 노동자 수는 몇 만명에 이르지만 사내하청 노동조합에 가입된 인원은 100여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 회사 노조 간부는 “블랙리스트 탓이지 다른 것 없다”며 “(노조에) 가입하면 두 번 다시 다른 업체에 이직을 못하고, 출입증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당해고로 고소하거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하면 대법원까지 7~8년 기다려야 하는데, 그걸 기다리면서 올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번 심층면접을 진행한 정 부연구위원은 “간접도용 노동자는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사용사업자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고용불안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통한 이해 대변은 원청 및 하청회사에 의해 거의 봉쇄돼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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