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중 고통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건 마취 덕분이다. 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이로부터 해방되는 것에도 마취제 역할이 크다. 마취는 몸의 고통, 정신의 흥분 상태에서 우리를 해방 시켜 일상의 복귀를 돕는 획기적 발견품인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170여 년 전인 1846년 의사이자 화학자인 찰스 토머스 잭슨과 치과의사인 윌리엄 그린 모턴이 마취제 발명 특허를 신청하면서부터 우리 삶의 질은 달라졌다.
마취가 어떤 작용을 하길래 2세기 동안 우리의 필수품으로 다가왔을까. 우선 조울증을 비롯해 정신질환 치료에 획기적 약물로 등장한 클로랄 하이드레이트와 클로르프로마진의 예를 들면 이렇다. 이 약물들은 일종의 ‘분리’로 정의된다.
조증이나 울증의 치유라기보다 그것이 일으키는 ‘요인’을 무감각하게 해 환자들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게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엔 모순이 존재한다. 인간 존재의 본질 일부를 도려냄으로써 정상이 아닌 그들을 ‘정상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 환자의 증세는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공허한 존재가 됨으로써 사회가 안정을 얻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마약으로 흔히 알려진 코카인(초기 연구에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까지 참여)은 국소 마취제로 뛰어난 효과를 보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각성제로도 기능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신경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겐 억제제 형태로 작용한다. 저자는 수백만 항우울제 소비자에게 매일 시행되는 마취(감각의 제거)에서 치료제를 자처하는 코카인의 치료는 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조증에 효과가 좋은 클로랄 하이드레이트는 불면증 치료에도 새 지평을 열었다. 하지만 이는 혁명이 모의될 수 있는 밤의 정치권력이나 적절한 수면을 통해 노동자가 다음 날 왕성한 노동력을 발휘하기 원하는 고용주에게도 꼭 필요한 약이었다.
저자는 앞으로 세계가 불면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넘어섬으로써 노동시간을 더 늘릴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임약도 신체의 기능을 일부러 고장 내 임신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리인데, 이 원리가 항우울제 작용 방식과 비슷해 기능장애를 통해 인간을 기능적으로 만드는 이상한 모순이 잠재돼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마취가 단순히 개인의 고통 해방에 머물지 않고, 크게 보면 정치적인 역학 관계에서 유리한 노림수를 계산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가 그 안에 잠재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중의 ‘흥분’을 잠재우려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허버트 스펜서 등 여러 학자의 이론과 생각을 인용해 부정적 의미의 ‘군중’과 긍정적 의미의 ‘공중’에 대한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긍정적 광기와 인간 고유의 존재를 마취라는 개념을 통해 차단하려는 이 시대를 저자는 ‘나르코자본주의(마취·마비된 자본주의) 시대’로 정의한다.
또 물질 덩어리를 뜻하는 단어와 대중을 가리키는 단어가 모두 ‘매스’(mass)라는 점을 통해 인간이 기능적인 물질 덩어리로 취급받는 현실을 꼬집는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점점 마취돼 가고 있다”며 “집단이나 개인이 인간 고유의 본질, 즉 긍정적 광기와 흥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회로 나아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취의 시대=로랑 드 쉬테르 지음. 김성희 옮김. 루아크 펴냄. 148쪽/1만30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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