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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저금리로 갈아타세요"…혹하면 낚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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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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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사는 30대 박 모씨는 지난 6일 A캐피털로부터 솔깃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문자에는 박씨가 정부 지원 서민대출 지원 대상이라는 내용과 함께 '기존 채무액 중 500만원을 상환하면 4000만원까지 저금리 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담겨 있었다. 대출금리가 꽤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을 안고 있던 데다 추가 대출이 필요했던 박씨는 그날 서둘러 500만원을 마련해 송금했다.

송금 후 박씨는 A캐피털에 연락했다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문자를 보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한 박씨는 "이자율은 오르고 대출을 추가로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아 걱정하던 찰나에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혹했다"고 털어놨다.

서민을 울리는 보이스피싱 대출사기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 11월 기준금리가 오르고 금융권이 여신 심사를 깐깐히 할 움직임을 보이자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서민을 '저금리'와 '추가 대출'이라는 가짜 미끼로 유혹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기존 채무액 중 일부 또는 전체를 갚으면 추가로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며 피해자들을 꼬드기는 게 사기범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남양주에 사는 건설현장 근로자 김 모씨(58)는 지난달 초 시중은행 직원을 사칭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미 2000만여 원의 빚이 있던 김씨는 '600만원을 우선 상환하면 저금리로 대출을 전환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600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이 역시 보이스피싱 조직의 사기였다.

경찰청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러한 수법은 '대환대출' 사기에 해당한다. 대환대출이란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기존 대출금이나 연체금을 갚는 제도다. 대환대출 사기를 치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B금융회사를 사칭해 'C금융회사에 갚을 돈을 보내주면 우리가 대신 갚아주겠다'며 개인 계좌번호를 제시한다. '기존 대출 상환 조건' 유형 사기다.

1회 이상 수수료를 먼저 내면 대출해 주겠다고 꼬드기는 '수수료 납부 조건' 유형의 사기도 있다. "고금리로 대출을 받은 후 갚은 이력이 필요하다"며 카드론을 받을 것을 권유한 뒤 즉시 빚을 상환하라고 요구하는 '선(先)고금리 대출'도 전형적인 유형이다. 피해자가 입금한 뒤 보이스피싱범들이 잠적하면 피해자에게는 카드론 빚만 고스란히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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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려움에 처한 서민일수록 이러한 사기의 함정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이다. 서민금융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출사기 보이스피싱 조직은 햇살론(신용도 6~10등급 혹은 연 소득 3500만원 이하 서민에게 제공되는 연 6~8%대 저금리 대출) 등 저금리 서민 지원 대출로 전환해주겠다며 기존 대출금을 사기범 통장으로 상환하도록 유도한다. 은행 대출이 어려운 서민의 속사정을 악용하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인상되면 제1금융권 대출 기준이 올라가 제2금융권으로 서민의 대출 수요가 몰리기 마련"이라며 "서민들이 대출사기 보이스피싱 범죄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은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대출사기는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대출 수요가 많은 40·50대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중 발생한 총 1만3000여 건의 대출사기 중 40·50대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64%에 달했다. 이 연령대의 남성 피해자는 38%, 여성 피해자는 26%로 남성이 더 많았다. 수사기관 등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에서 피해자 중 65%가 20·30대 여성인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박씨와 김씨처럼 피해를 입어도 범인을 잡는 게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예방만이 대책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대출사기, 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조직 대부분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근거지를 두고 한국에서는 일반인 모집책을 고용하거나 정보나 사진 등을 도용해 상담원을 사칭한다"며 "대포통장을 사용해 계좌 추적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대출을 권유한 금융회사가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인지, 대출을 권유하는 상담원이 금융회사에 정식 등록된 직원인지 조회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대출 권유를 받으면 지점에 직접 방문하는 등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인선 기자 / 안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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