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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韓 갈등비용 너무 커…이젠 `인간력` 키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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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14일 고려대 우당교양관.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라. 거꾸로 보면 태평양이 위로 펼쳐지며 우리가 나아갈 길이 보인다. 그런 창의적 아이디어를 소개해 준 분이 오늘 이 자리에 오셨다"고 말하자 학생들이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로 환영했다.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따라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가 강연대에 올라섰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83)이다.

김 회장은 이날 고려대 '라이프 아카데미' 강좌에서 '질문'과 '답변'을 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수업으로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했다.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동원참치를 많이 먹는다"고 답해 첫 대면한 학생들과 서먹했던 분위기를 '웃음'으로 바꿔놨다. 또 지금 행복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부경대를 나온 동기들이 바다에서 많이 죽었다. 부경대 교정에는 위령탑이 있다. 안 죽고 살아 있고 세계에서 가장 고기를 많이 잡는 회사를 만들었으면 행복한 것 아니냐"고 답해 강의장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김 회장은 "선장이 바다에 나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내 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1958년 참치잡이 원양어선 지남호 선원으로 시작해 동원그룹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 회장은 "한반도는 지구 육지 면적의 0.07%에 불과해 인구밀도가 높고 지하자원은 없지만 신은 한국에 유라시아 대륙의 부두라는 지리적 장점과 우수한 인적 자본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두 가지 커다란 이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여전히 '분단' 국가로 남은 원인은 "화합을 못해서"라고 진단했다.

김 회장은 "세계 각 나라가 자기편을 만들려는 연대와 동맹의 시대에 강대국들이 추구하는 것도 함께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라며 "연구개발(R&D)보다 협력개발(C&D)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갈등비용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면서 "머리 좋고 성적 좋은 사람이 주위와 화합을 못해 따돌림 당할 수가 있다. 한국도 이걸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자의 왕도론을 인용하며 '인화(人和)'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그는 이러한 연대와 연결은 인간력(人間力)에 의해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인간력은 사람을 끄는 힘, 매력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을 끌어 연계가 됐을 때 힘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전체 네트워크 가치는 네트워크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로 늘어난다는 메카프의 법칙(Metcalf's law)도 예로 들었다.

김 회장은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충고하면서 "증권회사를 인수하는데 주위에 증권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시골에서 태어나 배 타고 바다로 나가다 보니 네트워크를 쌓을 여건이 좋지 않았다"면서 "부지런히 점심을 사고, 심부름하며 네트워크를 쌓았지만 여전히 서울대 나온 사람, 서울에서 자란 사람에 비하면 아는 사람이 적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한 최근 70년 사이 세계가 급변하고 있어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신문'을 읽을 것을 조언했다. 그는 "동원그룹 과장급 이상 직원들에게는 최소한 경제지 하나, 일반지 하나씩은 보라고 한다"면서 "SNS를 통해 뉴스를 보는 것은 매일 패스트푸드만 먹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학생들 질문에 그는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 회장은 육영재단은 기업 돈이 아닌 개인 재산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원육영재단 장학생에는 이번에 현대자동차 사장으로 승진한 지영조 사장도 포함됐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뿌듯해했다.

김 회장은 1세대 기업인으로 40년 가까이 장학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동원그룹은 지난해부터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인문학 기반 수업인 '라이프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라이프 아카데미는 문학, 역사, 철학, 과학, 예술, 경제, 테크놀로지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독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사고하며 질문하고 경청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라이프 아카데미 취지와 내용에 공감한 대학교들도 이를 교과 과정에 도입하고 있다. 이날 김 회장이 방문한 고려대뿐만 아니라 연세대, 서울교육대, 숙명여대, 부경대 등 전국 10여 개 대학이 현재 라이프 아카데미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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