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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백마디 말보다 `몸의 언어`가 더 잘 通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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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당연한 소리 같은데 한동안 잊고 지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활자와 텍스트의 노예일 수밖에 없는 기자들로선 자주 망각하곤 하는 진실. 그렇다. 활자는 자주 우리를 배반한다. 기표와 기의가 번번이 미끄러지듯이. 차진엽 현대무용 안무가(40)가 말을 이었다.

"말로는 속이기 쉬워요. 하지만 몸은 정직하죠. 사랑을 전할 때도 '사랑해'라는 말보다 온몸으로 전하는 사랑이 더 진심이 느껴져요. 그리고 뇌보다 몸의 기억이 훨씬 뛰어나죠. 무용 같은 '몸의 언어'가 꼭 그래요. 동작에 맞는 음악을 들으면 오래전에 춘 춤도 금세 기억이 나거든요."

그를 만난 곳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카페. 내년 1월 1일이면 이곳에서 세계 3대 교향악단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생중계로 튼다. 이번이 6회째로, 지휘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 중계 전 차 안무가의 고전 발레 해설과 현대무용을 곁들인 '렉처(Lecture·강연) 퍼포먼스'를 30여 분간 선보인다. 렉처 퍼포먼스는 강연 형식을 결합한 퍼포먼스로, 현재 문화계에 가장 핫한 장르다.

그는 "연말연시 기분을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연초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무용감독으로서 현대무용 알리기에 앞장섰다. 상반기엔 영국 런던을, 하반기엔 인도와 이란, 중국 등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저한텐 완전한 휴식이란 게 어릴 때부터 익숙지 않아요. 몸을 쉬는 게 무용수한텐 가장 좋은 휴식일 텐데 저는 오히려 일 자체가 휴식이거든요."

출발은 고전 발레였다. 하지만 푸르디푸른 고교 2학년 열일곱 무렵 서울예고 발레 전공에서 현대무용으로 옮겼다. 오로지 홀로 내린 결정이었다. "사춘기 시절 몸도 변하고 정서도 변하잖아요. 그간 반복한 발레가 새롭지 않았어요. 매일 똑같은 훈련만 하잖아요. 반면에 현대무용은 완전히 새롭고 신비한 영역이었어요."

고전 발레가 정형화된 예술이라면, 현대무용은 무정형의 예술이다. 정해진 틀이 없어서다. 몸짓과 표정, 손동작 하나하나 새롭게 창조해낸다. 그는 "그 규격 없음이 좋더라"고 했다. "발레는 항상 분홍 타이츠를 입고 일주일에 한 번 체중을 재죠. 그 혹독한 훈련에 바탕해 찰나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펼쳐요. 하지만 제 기질상 현대무용의 자유로움이 잘 맞더라고요."

그의 작품을 관류하는 건 '차진엽' 자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그 자신이 무대 위에 그대로 투영된다. 자연히 '여성성'이 중요해진다. 허영 덩어리인 현실을 여성의 시선으로 풍자한 'Rotten Apple'(2012), 감각적 여성 무용가이자 안무가로 스스로를 반영한 '춤, 그녀… 미치다'(2014) 등 어느 하나 꼽긴 어렵다. 슬쩍 "삶의 화두가 있는지" 물었다.

"인생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거랄까요. 여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느끼는 게 많아요. 20대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도 컸고, 제가 항상 중심이었죠. 여성이 약자이다보니 그런 게 작품에 담겼어요. 어둡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죠. 그런 분출이 있었다면 30대엔 시야가 좀 넓어져 사회적 이슈로 관심을 넓히게 됐고요."

이제 그도 40대다. 그의 창작 지평은 점점 더 '본질'에 가까워가고 있다. 인간과 삶, 이 모두를 둘러싼 불가해한 세계로. 그는 "무엇이 잘 살고 건강한 삶인지에 대한 고민이 커져간다"며 덧붙였다. "우리 삶이 보다 행복하고 윤택해졌으면 해요. 이를 위해 제 재능을 세상에 환원하면서 감동과 치유를 주고 싶어요." 내년 1월 1일 퍼포먼스도 그 일환일 것이다. 그는 "새해의 희망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전해주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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