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
건강한 노년기 최대 적
지금 소중한 것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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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때 쓰인 『서경(書經)』에서 꼽은 인간의 오복 중 네 가지는 ‘잘 늙어가는 기술’과 관련이 깊다. 건강하게 살고 장수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복이라고 말한다. 백세시대에 접어들며 건강하게 잘 늙어가는 방법에 관심이 높은 때다. 같은 나이라도 활력 넘치는 노년을 보내는 이가 있는 반면, 항상 아프고 기운 없는 노인이 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노쇠는 노력에 따라 예방할 수 있다. 인생의 후반으로 가는 여정에서 챙겨야 할 ‘잘 늙어가는 기술 6가지’를 짚어본다.
노쇠는 근육량 감소와 밀접하다. 근육량이 적으면 근골격계가 약해져 움직이기를 꺼리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생활의 활력을 떨어뜨려 활동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근육량이 적어 몸의 내구력이 떨어지면 감염에 약해지고 회복이 더뎌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커진다. 근육량과 근육 강도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앉아 있거나 누워 있기를 좋아하는 노인성 생활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걷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한양대병원 재활의학과 이규훈 교수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허벅지가 단단해져 걷기가 편해진다”며 “하루에 100개를 할 수 있을 만큼 점진적으로 단계를 높여가면 근력과 균형감각을 기르는 데 좋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학습능력과 창의력이 떨어진다는 건 편견이다. 이동우(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대한노인정신의학회 부이사장은 “노년은 노화로 인해 암기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종합적인 판단력은 오히려 높아지는 때”라며 “인생 경험으로 다져진 지혜가 뒷받침돼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는 수용 능력이 성숙해져 학습능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습 욕구를 채우는 지적 활동을 활발히 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뇌 신경망 연결이 촘촘해진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최고 저서인 『새로운 두 과학』을 72세에 저술했다. 바흐·스트라빈스키·모네 등 여러 예술가는 노년에도 위대한 창작물을 완성했다.
사회적 유대관계는 노쇠 예방의 또 다른 핵심이다. 노인은 바깥으로 나와야 고독으로 인한 우울을 예방한다. 집에서 혼자 밥 먹기보다 집 앞 경로당에서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게 좋다. 평소 밥을 부실하게 먹고 앉아만 있는 노인도 경로당에서는 대화하며 놀고 다양한 반찬을 먹으며 끼니를 챙긴다. 김승현(한양대병원 신경과)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은 “치매 예방이나 관리를 위해 사회활동을 많이 하라고 강조한다”며 “밖에 나와 사람들을 자주 보고 관계를 형성해야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뇌가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이동우 교수는 “서울시의 50플러스센터처럼 중·장년층이 참여할 수 있는 지역 사회 커뮤니티에 가입해 정보를 주고받고 경험을 살려 봉사 단체에 참여하는 것을 권한다”며 “나이 들어가며 겪는 허전함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 들면 청각·시각·후각 등의 감각 기능은 떨어지지만 감성은 더 섬세해지고 예민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동우 교수는 “인생의 후반은 은퇴·사별·이별 등 상실을 겪는 과정”이라며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우울감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게 좋다. 특히 다양한 감정 중에서도 분노·슬픔 같은 증상을 속으로만 삭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서툰 사람일수록 두통·근육통·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잘 나타난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있다. 이 교수는 “감정을 수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족이므로 가족에게 자신의 상황을 가감 없이 설명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며 “비슷한 상황의 동년배나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나친 삶에 대한 집착이 가져오는 마음의 병이 건강염려증이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건강염려증은 오래 살고 싶은 병”이라며 “자칫 지나치게 생존에만 집착해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욕심이 떠나고 마음이 소탈해질 것 같지만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삶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 같이 불가피한 변화는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윤 교수는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언젠가는 죽는다는 삶의 한계를 인정하면 역설적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약해지면서 현재의 소중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시력·청력과 씹는 힘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에 영향을 준다. 노인성 난청이 있거나 백내장 등으로 시력이 좋지 않고 씹는 힘이 약하면 치매 발생 위험이 최대 5배까지 높아진다. 고립감·우울감이 늘어나고 뇌로 전달되는 여러 자극이 줄어들면 인지 기능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리가 잘 안 들리면 남과의 대화가 어려워져 소외되기 쉽다. 치아가 없으면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져 위축된다. 또 씹는 힘이 약해져 식사가 어렵고 영양은 부실해진다. 이규훈 교수는 “시력·청력·구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검사받고 보청기·돋보기·틀니·임플란트 등을 적극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백내장 같은 질환은 실명을 유발하므로 조기에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앓고 있는 만성질환
2.7개
복용하는 처방약 가짓수
3.9개
지난 1개월간 병원 방문
2.4회
자료: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17)
「
체중이 좀 더 나가는 고령자가 정상 체중이거나 저체중인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낮아 장수에 도움이 된다. 노인은 지나친 비만으로 합병증이 있거나 갑자기 체중이 증가한 경우가 아니라면 몸무게를 줄이는 데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여의도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주상연 교수는 “젊은 사람이 비만이면 심혈관·뇌혈관 질환이 이른 나이에 발병해 사망 위험이 크다”며 “하지만 고령자는 지방이든 근육이든 뭐든지 줄어들면 노쇠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감염병 같은 질병에 대항하려면 노인은 살이 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면역력이 생긴다.
한국의 노인은 고기를 잘 안 먹는 경향이 있다. 채소 위주의 식사가 좋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오히려 나이 들수록 고기를 챙겨 먹어야 한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살코기 위주로 고기를 잘 챙겨 먹어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건강한 노화의 열쇠”라며 “단백질이 충분하지 않으면 심장 운동력이 떨어지고 심혈관계 질환의 사망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하려면 필수아미노산이 필요하다. 필수아미노산은 체내에서 만들지 못하므로 식품, 특히 고기를 섭취해 보충해야 한다. 또 적색육(붉은 살코기)에는 체내 흡수율이 높은 철분인 ‘헴철’이 풍부하다. 임수 교수는 “노인 만성질환자의 약 3분의 1은 빈혈을 앓는데 적색육을 먹으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약을 덜 먹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 하지만 노인 환자는 신장과 간 기능이 저하돼 약이 몸속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다. 체내에 약물이 남아 있어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 소화장애·불면증 등 부작용뿐 아니라 어지럼증 때문에 낙상 위험까지 크다. 노인은 1년에 한 번 의사나 약사에게 먹는 약을 점검받아 불필요한 약은 줄여야 한다. 또 약국에서 약을 임의로 사 먹지 말아야 한다. 소화불량·어지럼증·변비·입마름 같은 증상이 약물에 따른 이상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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