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길어진 사이 피해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이춘식씨만이 유일한 소송 생존자가 됐다.
피해자 측 김세은 변호사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씨는 연세가 많으시긴 하지만 현재 건강은 괜찮은 상황”이라면서도 “예전보다 많이 기력을 잃으신 것 같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 피해자들은 생애 마지막을 보내면서 목숨을 걸고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며 “재판을 거래 수단으로 삼고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켰다니 참담한 심정으로 보고 계시다. 이씨는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아흔여덟 해를 산 줄 아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역정을 내시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일본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17살 어린 나이에 보국대에 지원했다. 보국대는 일제가 조선인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이춘식씨가 지난 25일 일제 강제징용 당시 제철소에서 얻은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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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망한 뒤 돈을 받기 위해 가마이시 제철소를 다시 찾았지만 전쟁으로 이미 폐허가 돼 있었다.
재판의 시작은 1997년 일본 오사카 법원이었다. 여운택씨 등 2명은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고 첫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이 확정됐다.
피해자들은 다시 한 번 한국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2005년 서울지방법원(현재 서울중앙지법)에 여씨와 이씨 등 4명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기각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2년 “일본 법원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와 정면 충돌한다”며 사건을 2심 재판부로 되돌려 보냈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는 신일본제철이 이씨와 동료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신일본제철 측이 불복했고, 같은 해 대법원에 재상고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가운데 유일한 생존 원고 이춘식씨.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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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을 끌어온 이 소송의 끝이 보이는 듯했지만 대법원은 다시 5년 넘게 판결 선고를 미뤘다. 최근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이후 당시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가 강제징용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씨는 “아무 의미도 없는 재판인가보다 싶었다. 대한민국 재판은 썩은 재판이다”라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정당한 판결을 대한민국에서 결정해줘야 한다”며 이번 대법원 선고에서 상식에 맞는 정당한 결론이 나기를 기대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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