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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팝업리뷰]'늦여름', 따뜻한 감성과 불편한 상황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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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헤럴드POP=안태현 기자] ‘늦여름’은 우리가 미처 사랑하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배우 임원희에게 이토록 사랑스러운 면이 있었다니. 영화 ‘늦여름’을 보고나면 가장 먼저 들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그간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코미디(‘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악역(‘쓰리, 몬스터’), 시한부 인생의 슬픔(‘뜨거운 안녕’)과 같이 폭넓은 연기를 펼쳐왔던 임원희. 하지만 여전히 그의 이미지에 너무나 강력하게 각인된 ‘다찌마와리’는 임원희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사랑스럽다’라는 표현보다 ‘귀엽다’와 같은 유의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어왔고, SBS ‘미운우리새끼’를 통해서는 ‘짠희’의 이미지까지 겹쳐졌다.

하지만 ‘늦여름’에서의 임원희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런 임원희가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내 성혜 역의 신소율 역시 사랑스럽고, 이런 둘을 질투하는 인구 역의 전석호, 정봉(임원희 분)이 과거 애틋하게 마음 속에 품었던 채윤 역의 정연주까지 사랑스럽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일까. 전작 ‘두 개의 연애’, ‘산타바바라’, ‘맛있는 인생’ 등의 작품들을 통해 여행 속 설렘과 사랑,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왔던 조성규 감독 특유의 감성이 독특하게 녹아들어간 덕분일 터다. 인생을 바꿀 큰 사건이 없더라도 소소한 삶에서의 변화가 주는 어떠한 감성은 조성규 감독의 여행에 항상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들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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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늦여름' 스틸


물론, ‘늦여름’의 이야기는 신선하지 않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그렇기에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정봉(임원희 분)과 성혜(신소율 분) 부부.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 찾아오는 뜻하지 않는 손님들이 있다. 정봉의 직장 후배이자 과거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싹 틔었던 채윤(정연주 분)과 과거 성혜의 연인이었던 인구(전석호 분)다. 인물의 관계에서만 지켜봐도 영화의 감정선이 어떻게 흘러갈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네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감정의 폭발, 그리고 해소 혹은 화해일 것이다.

하지만 ‘늦여름’은 이러한 예측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피해간다. 바로 감정의 폭발이다. 영화 내내 성혜와 인구가 어떠한 의견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이것이 ‘폭발’의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다. 이러한 지점이 영화를 다소 밋밋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영화 자체가 주는 감성은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적 재미가 다소 반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가 ‘서핑을 하는 것’에서 전해지는 데 ‘서핑을 하러 가는 과정’이 너무나 반복되는 것 역시 재미를 반감시킨다. 반복의 유머를 성취하기는 하지만 반복의 강요로 읽히는 순간, 유머가 통하지 않고 지루함과 불편함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사진=영화 '늦여름' 스틸


소소한 유머와 불편한 유머. ‘늦여름’은 계속해서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특히 후반부 그려지는 이야기 속에서는 범죄를 예술로서 미화하려는 다소 불편한 치환이 일어나 감성을 깨뜨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소함에서 오는 유머와 감성들이 오히려 사건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흐트러진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가 어떠한 자극적 사건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소소한 영화의 분위기에 어떠한 균열을 가지고 온다는 것에는 부정할 수 없다. 허나 그럼에도 '늦여름'은 간간히 새어나오는 웃음을 즐기면서 일상에서의 휴식과 같은 영화를 즐기고자 한다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법한 면모들도 있다.

제주의 풍경이 그것이다. ‘늦여름’은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의 관계에서 서사를 이끌어오기는 하나 이는 영화가 구성되기 위한 뼈대에 불과하다. ‘늦여름’이 궁극적으로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것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녹아들어간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제각각 가지는 ‘기다림’의 의미다. “지나간 파도에 미련을 두지 마라. 기다리면 좋은 파도는 다시 온다!”는 서핑 강사 승수(허동원 분)의 말처럼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그저 파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섬 ‘제주’의 풍경은 영화 ‘늦여름’이 전하고자 하는 ‘기다림’의 의미를 관통한다.

누군가에게는 ‘이쯤 되면 충분’한 기다림과 ‘아직 더 할 수 있다’의 집념을 이끌어내는 기다림. 하지만 제주는 그러한 모든 순간에도 조급함을 내지 않는다. 기다리는 건 기다리는 것이고 미련만을 두지 않는다. 조급함을 내지 않는 유유자적함. ‘늦여름’은 이런 제주의 풍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 지쳐있는 관객들에게 소소한 ‘여유’와 '기다림'의 의미를 전해주기에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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