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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첫 삽도 못 뜬 삼성동 105층 신사옥…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딜레마에 실적↓…수렁에 빠진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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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한전 부지 현대차그룹 신사옥 건설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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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만 무려 10조원을 들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 신사옥 건설이 계속 지연되면서 현대차그룹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차례 국토교통부의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 문턱을 넘지 못해 연내 착공도 불투명해졌다. 현대차그룹 숙원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명실상부한 ‘그룹 2인자’로 등극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고민도 커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7월 20일 열린 2018년 제2차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서울시가 제출한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계획안이 보류됐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신사옥에 한데 모이는 만큼 인구 유발,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더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 보류 이유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 산하 수도권정비위원회는 한전 부지처럼 공공기관이 이전한 1만㎡ 규모 이상 대지에 새로운 인구유발시설을 지을 때 거쳐야 하는 심의 절차다. GBC가 들어서면 현대차 15개 계열사 등 상주인구만 1만여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에 적절한 인구 분산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GBC가 수도권정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해 12월과 올 3월에 이어 벌써 3번째다. 현대차는 당초 연내 GBC를 착공해 2021년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이 같은 공사 일정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다. GBC 사업이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하려면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안전영향평가,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 등 사전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한다. 서울시 교통·환경·안전영향평가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 사실상 연내 착공이 어려워졌다. 재계 관계자는 “수도권정비위원회가 보통 분기마다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올 4분기 심의를 통과해도 물리적으로 연말까지 착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정부 산하 위원회가 GBC 심의를 계속 퇴짜 놓는 것을 두고 사업 계획 자체보다 서울 집값 상승세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강남 집값이 과열된 상황에서 강남권 한복판인 삼성동 GBC 공사가 시작될 경우 완공 기대감에 집값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란 분석에서다.

GBC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숙원사업으로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높이 569m, 지하 7층~지상 105층 규모로 105층 타워 1개 동과 35층짜리 숙박·업무시설 1개 동, 6~9층 전시 컨벤션 공연장용 건물 3개 동 등 총 5개 건물로 구성된다. 총 사업비 10조원대, 공사비만 2조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105층 타워 높이는 569m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123층, 555m)를 웃도는 만큼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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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만 10조원, 4년째 허허벌판

하지만 GBC 사업이 계속 지연되면서 현대차그룹은 초조해하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은 2014년 한전으로부터 삼성동 부지 7만9342㎡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했다. 당시 감정가(3조3466억원)의 세 배가 넘는 3.3㎡당 4억4000만원에 사들이며 ‘고가 매입’ 논란이 일었다. 현대차그룹과 입찰 경쟁을 벌인 삼성전자는 4조~5조원 수준의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전 배만 불려줬다”는 비판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 돈으로 차라리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왔음에도 정몽구 회장은 “공기업인 한전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라”는 독특한 논리를 내세우며 한전 부지 인수를 강행했다.

하지만 인수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GBC 건설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공사 일정이 한없이 지연되면서 현대차뿐 아니라 GBC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도 내심 속앓이하는 분위기다. 공사 비용만 2조5000억원이 넘는 거액 프로젝트인 만큼 금융 비용 등을 고려하면 착공 지연에 따른 손실액이 5000억원을 넘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워낙 비싸게 매입한 만큼 지금 와서 한전 부지를 다른 곳에 팔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한시라도 빨리 GBC 착공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그룹 숙원사업인 GBC 공사가 난항을 겪으면서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 고민도 깊어졌다. 그는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최근 9년여 만에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으로 올라섰다.

정몽구 회장에 이어 2인자로 올라서면서 현대차그룹 신사업뿐 아니라 그룹 경영 전반과 핵심 프로젝트를 챙겨야 하는 정의선 수석부회장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GBC 신사옥 건설이 지연되는 데다 현대차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 중국 판매 부진도 심상치 않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후폭풍에 시달리면서 현대차 중국 판매량은 지난 7월 기준 3만18대에 그쳤다. 현대차 중국 판매가 3만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2009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 현지 완성차 품질이 높아져 현대차 경쟁력이 점차 밀리는 모양새다.

미국 시장에서는 올 들어 8월까지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판매량이 849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했다. 제네시스가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음에도 정작 판매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실적도 좀처럼 회복할 기미가 없다. 올 2분기 현대차 영업이익은 지난해 2분기보다 30%가량 급감한 9508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부터 3분기 연속 영업이익이 1조원에 못 미쳤다. 2분기 순이익도 지난해 대비 11%가량 감소한 8107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박인우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세단 라인업에 치중해온 현대차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미국 시장에서 6종의 신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내놓는데 경쟁사 신모델 출시 경쟁도 치열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설상가상 미국 행정부는 수입산 자동차·부품에 대해 최고 25% 관세 폭탄을 부과하려는 움직임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 9월 중순 평양 남북정상회담 참석을 포기하면서까지 미국 방문을 택한 것도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분석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 등 행정부 고위 관료를 잇따라 만나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관세장벽이 생기지 않도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통상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량 제한, 고율의 관세 부과 등을 취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사실상 사문화됐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4월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부활했다. 이 법이 발동되면 수입산 자동차에 대해 최대 2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대미 자동차 수출량의 절반가량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명운이 걸린 조치다.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을 만드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다. 올 상반기 야심 차게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헤지펀드 엘리엇의 집요한 공격으로 물거품이 된 만큼 새로운 개편안 마련에 대한 부담이 크다. 계열사 합병 비율을 투명하게 조정하는 한편 주주친화적인 내용을 담아야 하는 만큼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50여년간 고속 성장하며 재계 2위까지 오른 현대차그룹이 사실상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미국, 중국 시장 부진이 심각한 데다 그룹 숙원사업인 GBC 공사까지 지연되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분위기다. 글로벌 판매 회복과 함께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야 정의선 부회장 승계가 보다 순탄할 것이다.” 재계 관계자 촌평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 [경이코노미 제1978호 (2018.10.10~10.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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