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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개기일식으로 곤충 행동 '일시정지'...소리로 본 벌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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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1일(현지시각), 미국에서는 1979년 2월 이후 38년 만에 개기일식이 일어났습니다. 태양이 달의 그림자 속에 완전히 몸을 숨기자, 미국 전역 5000km에 그림자가 드리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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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항공우주국(NASA)가 공개한 개기일식 사진. 21일(현지시각) 워싱턴 케이케이드 국립공원 북부에서 촬영된 것이다. 한편 미국 미주리대를 비롯한 공동연구진은 개기일식에 따라 벌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는 관찰을 토대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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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 달과 해의 만남. 그런데 일식에 놀란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었을까요. 10일 캔디스 갈렌 미국 미주리대 생물학과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진은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람들은 일식을 보며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했지만, 곤충들의 움직임은 '일시 정지' 상태가 됐다는 것이었죠. 이 연구결과는 같은 날 미곤충학회지(Annals of the Entomological Society of America)에 발표됐습니다.

소리로 본 벌의 움직임...美 16개 지역서 '일시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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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1일 중국 동부의 양저우에서 촬영된 꿀벌의 모습. 꿀벌은 민들레 등 충매화의 화분을 암술로 매개하는 수분매개체 역할을 한다. 일부 꽃은 밤이 되면 꽃잎을 닫아 수문매개체의 접근을 차단하기 때문에, 개기일식으로 인한 광도 변화를 벌이 야간으로 해석했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사진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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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소리를 통해 벌의 움직임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벌이 먹이활동을 할 때 날개 근(Wing Muscle)에서 붕붕 소리가 나는 것에 착안한 것이죠. 이 연구에는 400여명의 전문 연구진과 함께 미국 전역의 초등학생들도 참여했기 때문에 전국에서 소리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꿀벌ㆍ호박벌 등이 자주 날아드는 꽃에 USB 크기의 마이크를 부착하고 개기일식이 일어나기 한 시간 전부터 소리를 모았죠.

태양이 완전히 가려지자, 연구진은 종일 붕붕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던 벌들이 일순간 조용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주리ㆍ오리건ㆍ아이다호주(州) 등 미국 16개 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동시에 관찰됐죠. 연구 결과는 지역에서 수집된 소리 데이터를 무작위로 선정ㆍ중첩해 도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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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이 발생하자 소리가 완전히 멈춘 것을 볼 수 있다. 완전한 일식이 발생했음을 의미하는 'totality'에서 벌의 행동(Bee activity)가 갑자기 급감했음을 나타낸다. [자료제공=Annals of the Entomological Society of America]


연구를 진행한 캔디스 갈렌 교수는 "처음에는 태양이 달 그림자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부분일식'을 따라 붕붕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벌들은 개기일식이 일어나자 완전히 멈춰버렸다(stopped)"고 설명했습니다. 이 현상이 매우 극적이었다는 것이죠.

햇빛 따라 바뀌는 꽃ㆍ벌의 수분 활동 원인으로 추측...매미는 울음 그치고 거미는 짓던 집 해체


벌이 일시 정지 상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연구진은 꽃과 벌, 햇빛이 동시에 관여하는 '수분 활동'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식물은 꽃가루(화분)를 암술에 옮김으로써 번식을 하죠. 이런 역할을 해주는 곤충 등 매개자를 수분 매개체라 합니다. 벌 역시 이런 역할을 맡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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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에는 자원봉사자와 초등학생들까지 참여해 400명이 넘는 규모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미국 16개 주에서 벌이 자주 찾는 꽃에 USB 크기의 마이크를 부착했고 이를 통해 소리를 수집했다. 각지에서 모은 소리는 무작위로 추출ㆍ중첩시켜 일관성을 판단했다. [사진제공=Annals of the Entomological Society of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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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민들레와 같은 꽃은 밤이 되면 수분 매개자가 접근할 수 없도록 꽃잎을 닫아버립니다. 연구진은 벌이 태양 빛의 강도, 즉 광도를 해석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하기 때문에 행동을 멈췄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대부분의 곤충은 미기후(Microclimate), 즉 땅과 접한 지상 1.5m 높이의 좁은 지역의 기후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벌의 행동도 개기일식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기일식이 온도와 광도(Light Intensity)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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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논문을 통해 "곤충의 활동은 미기후(Microclimate)에 큰 영향을 받는다"며 개기일식으로 곤충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가정했다. 미기후는 지상 1.5m 이하의 미세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기후의 변화를 가리킨다.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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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개기일식과 곤충의 행동 변화를 관측해 본 결과, 1991년 멕시코와 중남미 지역에 개기일식이 일어났을 때는 매미가 울음을 완전히 멈췄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거미줄을 짜던 왕거미는 개기일식이 일어나자 갑자기 거미줄을 해체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죠. 태양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다시 거미줄을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각각이 모두 연구자...연구 교육 측면 부각


한편 이 연구는 준비과정에서부터 초등학생들과 함께 진행돼, 교육적 측면에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셰퍼드 블러바드 초등학교 교사인 마시 피츠패트릭은 “학생 한 명 한 명이 벌 분석가로 참여할 수 있었다”며 공동연구의 의미를 부여했죠. 갈렌 교수 역시 “30년 이상의 연구 경험이 있는 과학자들과 초등학생이 함께 연구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아이들은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벌이 밤인 줄 알고 움직임을 멈출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상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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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기일식과 꿀벌 연구에는 초등학생들도 참여했다. 연구를 진행한 캔디스 갈렌 미주리대 생물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연구에 참여하기 전부터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밤인줄 알고 벌이 행동을 멈출 것으로 예측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아이들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 [사진제공=Annals of the Entomological Society of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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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 천문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기일식은 약 1200만명의 사람이 관찰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미 과학 매체들에 따르면 다음 개기일식은 2024년 8월 8일이며, 멕시코 만 일대ㆍ텍사스 주ㆍ미 북동부의 메인 주 등에서 관측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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