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메모리 분야 점유율만 60%
“시스템 반도체, 기술 장벽 높지만
수익·안정성 보장돼 투자 늘려야”
초호황 반도체 산업의 그림자
DB하이텍은 한국 ‘시스템’ 반도체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스로 반도체 강국이라고 자랑하지만, 엄밀하게 따져 ‘메모리 강국’일 뿐이다.
국내 업체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하지만 시스템 반도체의 점유율은 3% 남짓이다. 세계 1위인 미국(70%)은 물론 대만(8%), 중국(4%)에도 밀린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D램·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메모리는 데이터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반도체다.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연산·제어하는 기능을 한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처럼 제품의 ‘두뇌’ 역할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4분의 3가량, 금액으로는 2880억 달러(약 326조원)를 차지하는 게 시스템 반도체다.
물론 삼성이나 하이닉스도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한다. 다만 삼성전자는 모바일AP·이미지센서 등 자체적으로 필요한 물량 위주다. 이 회사는 6조5000억원을 들여 경기도 화성에 차세대 극자외선(EUV) 라인을 건설 중이지만 메모리에 비하면 투자가 소극적이다. 하이닉스는 시스템 반도체 매출이 전체의 1% 남짓이다.
한국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도 존재감이 떨어진다. 시스템 반도체는 종류가 다양하고 수요자의 요구도 제각각이다. 따라서 ‘맞춤형’ 제작이 필요하고, 설계전문업체(팹리스)가 그 역할을 한다. 예컨대 팹리스인 미국 퀄컴이 모바일AP를 설계하면, 대만 TSMC가 제조를 맡는 식이다. 세계 50대 팹리스 중 국내 업체로는 LG 계열사인 실리콘웍스가 유일하다.
현장에선 인력난을 호소한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 해 500명 안팎의 연구개발 인력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이렇게 심각한 불균형 구조가 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반도체에 처음 투자하던 1970년대부터 일본 영향으로 메모리에 집중했고 ▶시스템 반도체 역시 메모리처럼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며 ▶기술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 등을 꼽는다. 메모리 반도체가 초호황을 겪으면서 ‘메모리 쏠림’이 더 커졌다는 해석도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보다) 복잡하고 어려워 선두 업체와 격차가 큰 분야다. 반면 한번 입지를 다져놓으면 수익성·안정성이 모두 보장된다”며 투자 확대를 강조했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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