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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반도체 잘나가도…한국 장비업체 82곳 중 13곳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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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하이닉스 영업이익률 39%

장비·부품업체는 평균 14% 그쳐

“두 기업 협력업체 빼면 거의 적자”

메모리공장 투자 70% 장비값인데

국산화율 18% … 해외업체만 득봐

정부, 올 신규 R&D 지원금은 0원

초호황 반도체 산업의 그림자
중앙일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공장의 내부 모습.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힘입어 올 3분기까지 반도체에서 36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열 곳 중 한 곳이 영업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실적이 뒷걸음질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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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2개 반도체 장비업체 중 13곳이 적자를 봤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올렸는데도, 반도체 초호황이 겉만 번지르르 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17조5000억원의 사상 최대 분기 영업이익(잠정)을 올렸다고 지난 5일 발표했다. 1분에 1억3000만원을 벌어들인 셈으로, 증권가에선 이 중 75%인 13조원을 반도체로 벌었다고 본다. 아직 잠정실적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증권가에선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을 6조2800억원으로 전망한다. 예상대로라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68% 늘어난 호실적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기형적인 구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마땅한 기업이 없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주춧돌이 되는 반도체 후방산업(장비·부품·소재)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앙일보가 한국거래소에 의뢰해 반도체 업계 상장사 166곳의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률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비해 장비업체 이익률은 크게 낮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평균 39.1%였다. 하지만 같은 기간 반도체 장비업체는 13.5%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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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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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선 한국거래소 팀장은 “같은 반도체 업종인데도 영업이익률이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해당 산업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소자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협력업체를 빼면 흑자 보는 곳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한국 반도체=삼성·하이닉스’인 기형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1%에 불과하다. 소재 업체도 9.9% 수준이다. 최재성 극동대 반도체장비공학과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가 세계 정상에 올랐으면 후방산업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반도체 후방산업의 낮은 국산화율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장비 산업의 국산화율은 18.2%에 불과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장비 의존도가 높은 분야다. 메모리 반도체 공장 투자액의 70%는 장비값으로 쓰인다. 예컨대 30조원을 들여 공장을 지으면 장비를 사는 데 21조원을 쓴다. 이 중 16조원을 해외 업체가 벌어들이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종합반도체(IDM) 업체인 것도 기형적인 구조의 이유로 꼽힌다. 메모리 반도체는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팹리스의 의뢰를 받아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공정을 처리할 수 있는 종합반도체로 나뉜다. 팹리스나 파운드리가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후방 업체의 부실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역대 최대 호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업계에선 4분기 이후가 문제라고 보는 큰 이유다. 삼성전자의 3분기 호실적의 기반이 된 D램 가격은 4분기부터 하락세를 탈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디램익스체인지는 4분기 D램 가격(고정거래가격)이 3분기 대비 5%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당초 예상보다 1~2% 더 낮아진 것이다. 하락 폭을 더 크게 본 것이다. 디램익스체인지는 낸드플래시의 평균 판매 단가를 3분기(-13%)에 이어 4분기에도 12%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전망은 더 어둡다. 올해보다 D램은 15~20%, 낸드플래시는 25~30%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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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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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반도체 수출이 늘었다지만 수량 기준으로 D램 수출은 감소했고 메모리 용량을 기준으로 생산량을 따져봐도 호황기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이 있지만, 대기업이 주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 국한돼 있는 실정이고 당장 4분기부터 공급 과잉으로 인한 실적 하락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낙관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자 투자도 주춤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투자는 이미 감소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반도체 투자는 6.2% 감소했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 투자가 줄어들면서 설비(기계류) 투자는 3.8% 줄었다. 삼성전자조차 아직 내년 반도체 설비 투자 계획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이 시기에는 다음 해 상반기 설비 투자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이미 장비업체 등에 발주가 시작됐을 시기다. 이미 지난 8월 향후 3년간 반도체에 9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평택 반도체 공장에 빈 공간(3라인)도 있는 것을 고려하면 고민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3년간 대규모 투자 계획은 세워놨는데 역대 최대 수준이었던 올해(27조) 이상 투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시설만 들여놓고 물량을 살 사람도, 반도체를 만들 사람도 없는 상황에 빠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인력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무관심’이 인력난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도의 기술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개별 업체의 역량만으로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어려운 데도 인력 육성을 외면한 결과라는 것이다. 예컨대 웨이퍼 검사 장비를 개발하는 데 걸리는 개발 기간은 평균 5~10년, 시제품 제조에만 900억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연평균 810억원 수준의 연구개발(R&D) 비용 지원이 전부다. 2009년 1003억원이었던 R&D 지원금 전체는 매년 감소해 지난해 314억원에 그쳤다. 이 중 신규 기술 개발 지원금은 같은 기간 355억원에서 지난해 185억원으로 줄었다. 올해는 아직까지 0원이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쎄믹스 유완식 대표는 “건실한 중견·중소 반도체 기업이 많아져야만 반도체 전공자도 늘어나고 인력 유출도 막을 수 있다”며 “산학, 대·중소기업 협력을 늘리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인공지능(AI) 기술 확보가 미래의 IT 산업 경쟁력에 직결되기에 관련 반도체의 핵심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 지원이 절박하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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