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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문화대상 이 작품]소리꾼의 구슬픈 민요가락, 그 애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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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소리꾼 하지나(사진=서촌공간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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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민 국악평론가] 경기소리꾼 이희문은 민요라는 음악부터 그것을 향유 방식까지, 한마디로 민요를 둘러싼 생태계에 대한 실험과 복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선생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깊은 사랑’의 이름을 딴 시리즈물로 구현한 것도 이희문이다.

‘깊은 사랑’은 땅을 파서 만든 사랑채이다. 옛날 농한기에 마을의 남성들이 파내어 만든 움과 같은 방이라고 한다. 일을 하다 지친 이들은 이곳에서 잠시 눈을 붙이거나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고, 귀명창들은 소리꾼을 불러 소리를 청해 들으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이희문은 경기민요의 역사를 살피던 중 깊은 사랑의 존재를 발견했고, 움처럼 생긴 서촌공간 서로의 구조를 활용하여 현재 이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

올해 진행된 ‘깊은 사랑’ 시리즈는 좀 독특하다. 7월에 박애리(전 국립창극단 단원), 8월에 채수현(국립국악원 민속악단), 9월에 하지아(경기도립국악단)가 무대에 올랐다. 소리꾼들은 노래만을 부르지 않는다. 이야기와 재담으로 자신의 삶을 풀어낸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역시 이야기된 그들의 삶과 맞물려 있기에 평소보다 더 뜨겁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9월 7~8일에 공연을 가진 하지아의 무대(9월7일 서촌공간 서로). 삼십대 중후반의 하지아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외동아들인 아버지는 사랑 받는 아들이었으나, 딸에게는 성숙하지 못한 아버지로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늘 새 밥을 지어 내놓았고, 최고의 사랑을 베풀었다. 그 사랑은 자식은 물론 여러 손녀들의 옷을 해 입히는 데에도 들어갔다. 하지아는 바느질 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민요를 부른다. 경기민요 중 ‘배틀가’다. 노래에 함께 이재하의 거문고 소리와 전자음향이 간간한 양념을 넣었다.

하지아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도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힘겹게 모은 돈을 음반을 취입비용이라며 쥐어주던 때를 이야기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관객들도 안타까움의 감탄을 내뱉는다. 고백과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여니, 그 자리로 노래가 들어갈 차례다. 공연 때문에 할머니의 기일을 못 지킨 손녀는 황해도민요 중 ‘제전’을 부르며 제사상을 보듬는다. 무대 한 구석에 아까부터 왜 근조화환이 놓여 있었는지 알게 된다. 잔잔한 종소리를 연출하는 이재하의 음향을 타고 ‘제전’이 애절하게 흐른다.

‘깊은 사랑’은 일반적인 공연과 다르다. ‘민요’보다는 민요를 즐기는 다양한 ‘향유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애리, 채수현, 하지아로 이어진 이번 무대는 자신들의 삶을 풀어내던 그녀들만의 재담이 돋보인 시간이었다. 재담은 국악이 근대화로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잃어버린 것 중 하나다. 연행방식의 근대화에 따라 소리꾼들은 노래만 부르고, 끝나고 퇴장만 한다.

이러한 방식은 과거에 소리나 민요를 즐기던 방식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깊은 사랑’이 주목하는 것은 노래 잘 부르는 신세대 소리꾼이 아니라, 오늘날의 관객들이 민요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에 관한 ‘향유방식’에 대한 복원과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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