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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노동 지옥' 아마존은 왜 최저임금을 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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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 '저임금 개선' 압박

NYT "아마존 항복 고무적"

유통업계 '구인 경쟁'서 우위 선점하고

노조 가입 저지 회유한다는 분석도

“비판을 귀담아들었고, 앞서 나가기로 결정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직원들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다음달 1일부터 15달러(약 1만7000원)로 인상하겠다고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기존 직원 25만명은 물론 비정규직 기간제 직원 10만명도 인상된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다. 베이조스는 다른 고용주들에게도 “최저임금 인상 대열에 합류해달라”고 권유하는 한편, 시간당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의회에 로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짠돌이’로 유명했던 아마존은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걸까.

■최저임금 왜 올렸나

아마존은 시가총액 1조달러(약 1138조원)를 넘나드는 초우량 기업이지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아마존은 그동안 각 주(州)법에 따라 시간당 10~13달러의 임금을 차등 지급해왔다. 일부 물류직 직원들은 이 정도 임금으로 생활이 어려워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료품 구매권)’와 같은 정부의 공공부조에 의존해왔다. 지난 4월에는 “목표 작업량을 달성하느라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는 창고 직원들의 증언이 보도되면서 ‘노동 착취’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 결정을 두고 “아마존이 정치적 압박에 무릎을 꿇었다”는 분석이 가장 먼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난달 5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가 정부의 공공부조를 받는 경우 기업에 세금을 부과해 보조금을 환수하자는 이른바 ‘스톱 베이조스법안’을 발의했다. 법안 자체에는 허점이 많았지만, 아마존의 저임금 실태를 공론화하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아마존의 항복은 고무적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기업 이미지를 중시하는 아마존이 정치적 규제로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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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아마존의 한 물류창고에서 직원이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아마존 미국 직원 25만명과 공휴일 기간에 채용될 임시직 직원 10만명의 최저임금은 다음달 1일부터 15달러로 인상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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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사업적으로도 꼭 필요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올가을 쇼핑 시즌을 앞두고 월마트나 타깃과 같은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치열한 ‘구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미국의 유통업체 일자리는 지난 7월 기준 75만7000개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만개 늘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대도시에서는 전문 유통 기술을 확보한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달 기준 3.7%로, 48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마존은 이번 가을 휴가기간에만 10만명 이상의 임시직 직원을 추가로 고용할 예정”이라며 “미국 노동시장의 인력수급이 빠듯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15달러 임금은 아마존의 경쟁자들이 노동자들을 붙잡아두는 것을 더 힘들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의 노조 가입 의지를 꺾기 위한 ‘회유책’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아마존이 인수한 유기농 식품업체 홀푸드체인의 일부 직원들은 아마존 본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항의하며 노조 설립을 위한 단체를 출범했다. 이들은 지난달 490개 전 지점 직원들에 e메일을 보내며 본격적인 노조원 모집에 나섰다. 홀푸드 직원의 과반 이상이 노조에 가입하면 아마존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권도 인정받을 수 있다. 온라인매체 복스는 “(최저임금 인상은) 노조 가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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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요 소매업체별 최저임금. 각각 CVS와 월마트가 11달러, 타깃이 12달러, 코스트코가 14달러, 아마존이 15달러다. 이중 타깃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래픽출처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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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들의 평가는

아마존의 최저임금 인상은 가을 쇼핑 시즌을 앞두고 다른 대형 유통업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아마존의 최대 라이벌인 월마트는 지난 1월 시간당 최저임금을 11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달 뒤 타깃이 최저임금을 12달러로 올렸고, 2020년까지 15달러로 추가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코스트코도 지난 6월 최저임금을 13달러에서 14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아마존보다 규모가 작은 다른 중소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아마존은 직원 4명으로 중국의 한 공장을 운영할 정도로 급격하게 자동화되고 있고, 경쟁자들은 아마존만큼의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를 근거로 베이조스가 정부에 연방최저임금 인상을 건의한 사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정치적 홍보 효과에 비해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마존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대신 물류직 직원에게 지급하던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아마존의 연평균 중위임금은 변경 전에도 3만4123달러였고, 15달러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풀타임 근로자가 받게 될 3만1200달러와도 큰 차이가 없다. 보너스 삭감까지 고려하면 임금 인상 폭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업 내 소득 분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보다 홍보 효과를 노리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상 결정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많다. 블룸버그통신은 “아마존은 정치적 압박에 대응해 비교적 신속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며 “이는 시장 지배력이 있는 미국 대기업들에게 임금 인상 재량권이 더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움직임이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소득 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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