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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범준의 저스티스]학자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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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울지법 판사실에는 일본 법학자 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의 민법 교과서가 어김없이 꽂혀 있었다. 대법원이 최고재판소 판례는 물론이고 고등재판소 판결까지 베끼던 시절이다. 일선 판사들은 와가쓰마 이론에 기대 최고재판소 판례를 이해하고 분석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일본 민법을 쓰던 우리는 1960년에야 민법을 만들었는데 일본이 세운 만주국 민법을 참고했다. 이 만주국 민법 제정에 관여한 사람이 도쿄제국대학 교수 와가쓰마다. 우리나라 민법 245조 부동산 점유취득 시효도 그의 이론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서소문 서울지법 판사실에 일본 법률서적을 복사·제본해 파는 사람들이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한국 법조계는 일본 법학계의 식민지였다.

경향신문

정신적으로 계속되던 식민지를 끝내기 위해 학자들은 안간힘을 썼다. 양창수 전 대법관이 1970년대 서울대 재학 시절 법학과에서 국사학과로 전과하려 김철준 교수를 찾아갔다가 들었다는 얘기다. “나처럼 일제 때 공부한 사람은 일본 학자들의 관점이나 의식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어 후학에게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우선 한문을 배우고, 데이트도 고궁이나 박물관 같은 데서 해서 일체를 ‘우리 것’의 이해에 집중하라. 일본 사람들 생각에 은연중 물들지 않도록 일본말로 된 책은 절대로 읽지 말라.” 양창수는 아버지의 반대로 전과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이후 일본 법학을 넘어서 자기 세계를 구축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일본 영향력을 벗어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송상현 서울대 교수는 1976년 펴낸 민사소송법 교과서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법원 판결이나 국내 논문들이 일본의 그것을 제록스 복사한 듯한 것을 발견하였고 성문법의 해석 운용에 관한 주류적 발상과 관점이 오늘날까지도 일본 법학의 것을 일방통행으로 면세수입한 것임을 자꾸만 느끼게 되어 우월한 인방 법률문화의 정신적 외판원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각성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내용은 극일이지만 문장은 친일이었다. 처음 ‘경우에 따라서’부터 ‘강요당하게 되었다’는 마지막까지 일본어투다.

하지만 이런 치열함도 몇몇 학자 얘기였다. 다수는 게으르고 무책임했다. 대법원 판례를 제대로 챙겨 공부하는 교수가 적었고, 이를 바탕으로 판결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학자는 더 적었다. 한국인 첫 서울대 교수인 김증한이 1950년대 한 말이 여전히 유효했다. “대학교수들은 지식의 행상에 바쁘고, 법조인들은 그날그날의 사무 처리에만 골몰하고 있다. 대학교수들은 법생활의 실태와 거리가 먼 이론을 희롱하고, 법조인들은 모든 문제를 레디 메이드의 싼 이론으로 처리해 버리고 그 이상으로 깊은 이론적 검토를 할 여유를 못 가진다.” 이렇게 무능한 학계를 등에 업고 법원은 조금씩 타락해갔다.

타락의 정점에 양승태 대법원 시절 과거사 3대 판결이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위헌으로 선언된 박정희 정부 긴급조치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패소시킨 대법원 판결, 군사정부의 고문·조작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줄인 대법원 판결,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국가와 화해한 것이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결이다. 지난여름 헌재는 이 판결들이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세 가지 대법원 판결은 모두 문제가 있다. 대법원은 스스로 재심 사유를 만들지는 못한다. 헌재는 대법원에 재판을 바로잡을 기회를 준 것”이라고 이 결정을 주도한 김이수 전 재판관은 말했다.

헌재가 열성으로 사건을 심리하고 위헌을 선고한 배경에 윤진수 서울대 교수의 법학논문이 있다. ‘과거사 정리와 소멸시효’(2015)와 ‘위헌인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2017)다. 윤진수는 논문에서 대법원 판례들을 불러내 충돌시키고, 독일과 일본의 판례를 해체한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시는 일본 판례를 참고한 것이고, 또 일본의 판례는 독일의 판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이나 독일의 판례 자체에 문제가 있다.” 가만히 읽다가 성실함이 만든 디테일의 힘에 전율하게 된다. “쓰려면 그 10배를 읽는다. 그게 글쓰기 윤리다.” 법대생 윤진수에게 교양국어를 가르친 문학자 김윤식의 말이고, 그 시절 김윤식보다 나이가 많아진 법학자 윤진수는 그 윤리를 실천 중이다.

윤진수는 논문 마지막에 적었다. “이러한 이론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과연 국가의 조직적이고 고의적인 불법행위에 대하여 저항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을 법원이 이처럼 각박하게 대하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러한 판례가 혹시 국가의 재정 부담을 고려한 것이라면 매우 실망스럽다.” 이분법 세계로 불러내자면 그는 보수이다. 법조계 엘리트 모임 민사판례연구회 회장이다. 이런 윤진수는 진보 인사들이 대법원을 찾아가 항의하고 시민에게 호소하는 동안, 묵묵히 읽었다. 7평짜리 어두운 연구실을 지키며 읽었다. 그리고 썼다. 후배 교수에게 보이고 고쳐 썼다. 이렇게 해서 부정의가 가라앉고 정의가 드러났다. 이것이 보수의 힘이고 학자의 사명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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