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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또 人災인가…고양 저유소 화재 5대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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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9일 고양경찰서에서 경찰 관계자가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원인으로 지목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며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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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A씨(27)가 재미 삼아 날린 풍등(風燈)이 지난 7일 발생한 대한송유관공사 고양저유소 화재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대형 화재 원인의 윤곽이 드러났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9일 오후 A씨에 대해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A씨가 7일 오전 10시 32분께 인근 강매터널 공사 현장에서 날린 풍등이 저유소에서 300m 떨어진 잔디밭에 떨어져 불이 난 것을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확인했다"며 "이 불이 탱크의 유증 환기구(유증기를 외부로 배출하는 구멍)를 통해 내부로 옮겨붙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불덩이인 풍등만으로 이번 화재 원인을 모두 설명하긴 힘들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화재가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날 수 있는 화재'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다. 490만ℓ 휘발유를 담을 수 있는 탱크로부터 불과 300m 떨어진 곳에서 18분가량 초기 화재가 발생하는 동안 공사 직원이 이를 인지하고 대처했다면 대형 화재를 막을 수도 있었다. 이른바 '풍등발(發) 화재'를 둘러싼 5대 궁금증을 정리해봤다.

A씨가 날린 풍등은 인근 초등학교가 '아버지 캠프' 행사를 위해 지난 6일 단체 구매한 80개 풍등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풍등 2개가 공사 현장까지 날아왔고 A씨는 이 중 하나를 주워 쉬는 시간에 불을 붙여 날렸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학교 측 풍등 행사 자체의 적절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소방청 화재예방과에 따르면 풍등을 이용한 행사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화재 예방조치 등을 규정한 소방법 제12조는 화재 발생 위험이 있는 지역에서 소방당국이 풍등 날리기 등 행위를 제재할 수 있다고 규정하나 풍등을 이용한 행사 주체가 이를 사전에 신고할 의무는 없다.

이날 경찰이 공개한 화재 당시 CCTV 영상에 따르면 7일 오전 10시 32분께 A씨는 인근 터널 공사 현장에서 지름 40㎝, 높이 60㎝의 풍등을 날렸다. 4분여간 비행한 풍등은 화재가 발생한 저유 탱크로부터 300m 떨어진 잔디밭에 떨어졌다. 잔디가 그을며 타들어가는 장면을 포착한 후 영상은 10시 54분 폭발로 탱크 상부 지붕이 날아가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영상으로는 풍등이 떨어진 지점, 낙하지점에서 불이 타서 연결되는 부분이 잘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휘발유는 1.4~7.6%라는 일정 연소범위(대기 중 휘발유가 차지하는 농도)가 유지돼야 불이 붙는데 잔디밭을 통해 타고 들어간 불씨가 지속되면서 범위가 맞춰질 때까지 시간을 벌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기구 끝에 설치돼 화기가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인화방지망'이 오작동했을 가능성 역시 제기됐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장은 "장치가 설치돼 있었고 제대로 작동했다면 불씨가 내부로 들어가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풍등에 의해 잔디밭에 불이 붙었더라도 저유 탱크 화재까지는 18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사이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어떤 화재 징후도 감지하지 못했다. 화재 당시 490만ℓ들이 저유 탱크 14개를 감시할 CCTV 46개를 관제하는 대한송유관공사 직원은 3명(통제실 2명, 저유소 정문 경비인력 1명)에 불과했다. 저유탱크 부근에 외부 화재를 탐지할 수 있는 센서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작은 불씨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CCTV 화면이 정밀하게 잡히지도 않았다고 공사 측은 토로한다. 경찰이 잔디밭에 번진 불씨를 확인한 CCTV 화면은 46개 중 한 화면을 16배가량 확대한 것이라고 공사 관계자는 전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최준성 대표와 전 임직원은 이번 고양저유소 화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화재가 발생한 탱크에는 '폼액(유류 화재를 진화할 수 있는 액체)' 투입 장치가 2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내부를 향하도록 설치된 '표면 주입 방식'이라 장치 중 하나가 폭발한 덮개에 부딪쳐 돌아가면서 다른 방향으로 작동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교수는 "가스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장치에서는 그런 점을 고려해 내부보다는 외부에, 구조적으로 상부보다는 하부에 설치하는 방식을 고려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양 저유소 화재에 A씨의 풍등 날리기뿐 아니라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화재에 대한 A씨의 책임소재를 사법당국이 어느 정도 수위로 파악할지도 관건이다. A씨에게 실제 중실화 혐의가 적용돼 처벌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중실화는 피의자가 고의로 불을 내진 않았으나 피해가 막대한 경우 적용하는 혐의로 3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혐의 적용의 근거가 된 막대한 피해 규모가 다양한 주체에 의해 증폭된 결과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양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법조인은 "과실의 중대성 문제, 피해 액수를 따지는 양형 측면에서는 고려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양 = 지홍구 기자 / 강인선 기자 / 서울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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