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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한글 고어의 보고 제주어 "오멍가멍 보니 반갑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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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 간판 오남용 사례 많아…디지털 시대 제주어 사용환경 개선 필요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어는 제주 방언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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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를 활용한 문양 디자인
(제주=연합뉴스) 제주시는 제주어를 활용한 문양 개발 사업을 추진, 최종적으로 제주어 30선을 중심으로 13종류의 문양디자인을 개발했다. [제주시 제공]



아래아(ㆍ)와 쌍아래아(‥) 등 지금은 거의 사라진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의 고유한 형태가 남아있어 '고어의 보고'로 일컬어지지만 점차 사용 빈도가 줄어들면서 제주어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확산하면서 최근 제주어가 다양한 옥외광고물로 활용되고 있다.

좋은 효과도 있지만, 오히려 잘못 쓰이는 사례도 많아 572돌 한글날을 맞아 올바른 사용과 활용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본다.

◇ 재밌고 아름다운 제주어 간판

'뽕그렝이 먹엉갑서', '놀멍쉬멍', '곱들락' ….

도대체 무슨 뜻일까.

제주지역 음식점, 민박집, 미용실 등에 사용된 제주어 간판이다. 각각 '배부르게 먹고 가세요' '놀면서 쉬면서' '곱다(고운)'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제주어가 많이 친숙해졌지만, 여전히 국내 관광객들에게 제주어는 신비의 대상이다.

거리에 즐비한 낯선 제주어 간판만으로도 국내 관광객들은 '정말 제주로 여행을 왔구나!'라는 설렘과 신기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제주어로 된 간판은 제주 어디를 가든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간판개선사업이 이뤄진 제주시 신성로에는 상호가 제주어가 아니더라도 간판에다 업종에 맞게 재미있는 제주어 문구를 넣어 도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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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 활용 간판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간판개선사업이 이뤄진 제주시 신성로에는 상호가 제주어가 아니더라도 간판에 업종에 맞게 재미있는 제주어 문구를 넣어 도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모 정당 사무실 간판에는 'ㄱ+ㆍ치 살게마씸'(같이 살아봅시다), 고깃집 간판에는 '쿠시롱헌 냄새 남수다'(고소한 냄새가 납니다), 술집엔 '오널 술 ㅎ+ㆍ+ㄴ잔 ㅎ+ㆍ+ㅂ주'(오늘 술 한잔 하자) 등 정겹고 재미있는 제주어 글귀가 가득하다.

제주어를 활용한 간판, 즉 옥외광고물은 민간 차원의 '제주어 보전'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제주연구원 오승훈 전문연구원의 '옥외광고물 상호의 제주어 활용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2014년 기준 옥외광고물 상호에 제주어를 활용한 업소가 제주 전역에 456곳(제주시 262·서귀포시 194)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종별로 보면 식(食)생활 관련 업종 업소 355곳, 주(住)생활 관련 업종 업소 79곳, 의(衣)생활 관련 업종의 업소 22곳 순이었다.

최근 제주어 보전을 위해 행정이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제주시는 제주 문화의 숨결이 담긴 제주어를 활용한 문양디자인을 개발해 명함, 가로등, 간판, 우산, 시장가방 등 실용품에 적용했다.

느영나영(너하고 나하고), 오멍가멍(오가며) 등 시민이 좋아하고 널리 알려진 제주어를 선별해 이를 활용한 문양디자인을 선보여 제주어 보전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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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를 활용한 문양디자인
[제주시 제공]



◇ 소멸위기 제주어 활용 과제 산적

많은 제주어 간판이 사용되고 있지만, 잘못 쓰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앞서 제주연구원의 조사에서 제주어를 활용한 상호 456곳 중 87곳(19.1%)에서 표기 오류가 발견됐다.

제주도가 2010년 신고·허가받은 간판을 대상으로 조사할 당시에는 10개 중 4개꼴인 43.3%가 잘못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낭'(팽나무)을 '퐁낭'으로 표기하는 사례처럼 소리 나는 대로 사용하다가 잘못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아래아와 쌍아래아 표기를 잘못해 벌어진다.

'모두'란 뜻의 'ㅁ+ㆍ+ㄴ+딱'을 '몬딱'으로, '어서 오세요'란 의미인 'ㅎ+ㆍ+저 옵서예'를 '혼저 옵서예'로, '야무지게'란 뜻의 'ㅇ+‥+망지게'를 '요망지게'로 잘못 표기했다.

반대로 'ㅇ+ㆍ+ㄹ레촌'(올레촌이 맞음) 처럼 아래아로 적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잘못 적는 경우도 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에서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아래아와 쌍아래아 표기를 올바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잘못된 표기를 양산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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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를 활용한 문양 디자인
[제주시 제공]



결국 제주어는 2010년 12월에는 유네스코의 '소멸위기의 언어' 5단계 가운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되기도 했다.

제주학연구센터 김순자 박사는 "(소멸위기로 인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제주어 간판도 늘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아래아 또는 쌍아래아를 잘못 사용한 제주어 간판은 오히려 기형의 제주어를 양산하기 때문에 오히려 쓰지 않는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간판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언어와 문화의 기초자료인 만큼 잘못 쓰이는 제주어는 물론 외래어와 국적불명 언어로 오염된 간판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제주어 연구자들은 올바른 제주어 상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참고자료와 상담 창구를 개설하는 방안,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에서 올바른 제주어 표기를 할 수 있도록 사용환경을 개선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문제없이 제주어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한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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