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으로 복원된 북-미 관계는 일단 사찰단의 풍계리와 동창리 방문으로 긴 비핵화의 여정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장 폐기는 당초 김정은이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던 사안이지만 정작 폭파 이벤트 참관에 전문가는 배제해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이번 사찰단 수용은 약속 5개월여 만에 이뤄지는 뒤늦은 이행일 뿐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그동안 목표로 제시해온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의 핵심인 사찰, 검증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북한이 사찰단의 풍계리 방문을 허용할지라도 방사능 측정이나 시료 채취 같은 검증작업을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미국은 비핵화의 첫 단계인 핵무기·시설 리스트 제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주동적 선제조치’를 내세워 신고 절차도 없이 일방적 폐쇄 이벤트를 벌인 뒤 사후 눈요기 식 현장 확인만 수용한다면 검증은커녕 북핵의 과거도 영영 묻히고 말 뿐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비핵화는 안갯속인데도 북-미는 정상 간 빅딜에 대한 기대만 높이고 있다. 당장 관심사도 정상회담 시기와 장소, 특히 11·6 중간선거 이전이냐, 이후냐에 쏠려 있다. 북한은 선거 이후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조기 개최를 노리고 있고, 미국은 선거전에 도움이 될 가시적 성과여야 하는 만큼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1차 싱가포르 회담이 그랬듯 거창한 이벤트에 실질적 성과는 없는 속 빈 강정이 될 우려도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려 있다”며 “바야흐로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차례 김정은이 주도하는 정상외교 이벤트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기는 발언이 아닌지 의문이다. 대화 국면을 이어가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는 것은 없는지 면밀히 챙기는 것도 우리 정부의 의무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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