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김정은 직접 美에 “핵사찰 오라”… 폼페이오 “조사단 곧 방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비핵화 협상]5개월전 폭파 풍계리 사찰 초청

동아일보

5월 폭파된 풍계리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5월 폭파 당시 모습. 미국 국무부는 7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이 불가역적으로 해체됐음을 확인받기 위해 사찰단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앞서 5월 핵실험장 폭파 때는 CNN 등 외신기자 24명을 초청했지만 전문가들의 참관은 허용하지 않았다. 동아일보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은 5월 폭파 이후 한동안 잊혀진 곳이었다. 검증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북한이 거듭 “불가역적으로 파기됐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협상 카드로는 효용성을 다한 듯 보였다. 그랬던 풍계리 핵실험장이 사찰 검증이라는 추가 조치와 함께 북-미 협상의 동력이 될지 주목받고 있다.

○ ‘폭파 쇼 아니었다’ 확인받겠다는 北

미국 국무부는 7일(현지 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 및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친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이 불가역적으로 해체됐음을 확인할 사찰단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미측 협상단에 ‘사찰’을 직접 언급하며 핵시설 파기의 검증 의사를 직접 밝힌 것은 처음이다. 북한의 비핵화 이행 조치 중에서도 특히 ‘검증(verific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미국의 요구에 호응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해발 고도 2200m가 넘는 만탑산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이 6차례의 핵실험을 모두 실시한 곳으로, 이른바 ‘미래 핵’ 관련 시설로 분류돼 왔다. 북한은 2006년 10월 첫 핵실험 이후 추가 굴착공사를 통해 서쪽 북쪽 등 갱도를 지속적으로 늘려 왔다. 이후 북한은 지난해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고 올해 4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전격 선언했다.

현재 풍계리 핵실험장은 입구와 구조물이 폭파돼 폐쇄되고 지상 관측설비와 연구소 등도 철거된 상태다. 북한은 5월 한국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기자단을 초청해 핵실험장을 폭파한 이후 관련 시설에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폭파 시 이를 검증할 전문가를 부르지 않았고 기자들도 멀찍이 떨어져서 연기가 가득 피어오르는 폭파 장면을 지켜보는 수준에 그쳤다.

핵실험장 폐쇄는 단순히 내부를 폭파하고 입구를 봉쇄하는 정도를 넘어 핵시료 채취 및 동위원소 측정 등 세밀한 기술적 절차를 거쳐야 완료된다. 또 북한이 이미 핵실험을 벌인 1, 2번 갱도와 달리 여태껏 핵실험에 사용되지 않은 3, 4번 갱도는 복구 작업을 거쳐 사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 사이에서 꾸준히 재기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해당 갱도들에 대한 면밀한 검증 없이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쇄하고, 이를 비전문가인 언론에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런 비판에 직면하자 김정은은 지난달 초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을 만나 “국제사회의 평가가 인색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정은은 당시 “풍계리는 갱도의 3분의 2가 완전히 파기돼 핵실험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며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찰단의 초청은 당시 폭파가 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김정은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 ‘단물’ 빠진 협상 카드 뒤늦은 재탕?

이와 함께 사찰단의 방북이 성사되면 향후 영변 핵시설의 사찰 및 검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움직임이다.

정부는 풍계리 시설에 대한 사찰이 미국의 상응 조치 중 하나로 거론되는 평양 내 미국 연락사무소의 개설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해외 전문가들이 북한으로 들어가면 이들의 활동을 위한 연락사무소 개설 논의도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

자연스럽게 인적 물적 교류 활성화로 이어져 우회적 제재 완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게다가 2009년 북한에서 철수한 IAEA 전문가들이 이번에 9년 만에 방북할 경우 그 상징성 또한 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번 제안에 대해 새로운 비핵화 조치 없이 기존의 협상 카드를 다시 써먹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변 핵시설의 폐기나 핵신고서 제출 같은 조치를 진행하는 대신 이미 파기됐다고 주장해온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사찰 카드를 뒤늦게 꺼내드는 ‘살라미식 퇴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6차 핵실험까지 끝내서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북한에 핵실험장은 이미 필요 없는 시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장은 “북한은 지금까지 사찰이 아닌 ‘참관 방문’ 같은 표현만 써왔을 뿐 엄격한 의미의 사찰 허용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며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풍계리 핵실험장의 ‘불가역적 해체’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검증을 진행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은 8일 동행한 외신기자들에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완성되는 대로 북한이 (사찰단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며 “사찰단이 곧 방북할 것이다. 많은 실행 계획이 필요하지만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