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사노동 가치’ 첫 측정]‘GDP 4분의1 가치’ 집안일의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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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대가를 받지 않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처음으로 측정한 것은 ‘집안일’이라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취지다.
지금까지 가사노동은 통계상 경제활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업주부들의 경제적 기여도가 전혀 없는 것으로 해석되곤 했다. 이 때문에 유엔은 한국을 포함한 각국에 여성의 기여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치를 측정토록 권고했고 이번에 통계청이 이를 수용해 가사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한 것이다.
○ 전업주부 가치 ‘연봉 2315만 원’
8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대가를 받지 않는 전체 가사노동의 가치는 360조7300억 원에 달한다. 실제 국내총생산(GDP)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가사노동의 가치 정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통계청은 공식적으로 전업주부의 연봉을 산출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가사노동 가치는 GDP에 포함되지 않는 돈이어서 공식 임금 통계 기준에 따라 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보는 통계청의 공식 자료를 토대로 전업주부들이 가사노동을 통해 만드는 연간 가치를 추정했다. 통계청은 2014년 기준 가사노동의 시간당 노동 가치, 즉 집안일의 시급이 1만569원꼴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통계청의 2014년 기준 생활시간조사에서 나타난 전업주부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6시간이었다. 하루 6시간씩 365일 내내 했다고 가정하면 전업주부들은 2314만6110원의 연봉에 해당하는 근로를 한 셈이다.
만약 8시간 동안 가사노동을 하는 전업주부라면 연봉 기준 3680만1480원에 해당하는 가사노동을 한 셈이다. 통계청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구할 때 고용노동부의 임금 실태를 근거로 하는 만큼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최근의 가사노동 가치는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생활시간조사에 나타난 맞벌이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13분이었다. 이를 연간 가치로 계산하면 1240만6350원이었다. 반면 맞벌이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1분에 불과해 한 해 평균 263만4793원어치의 가사노동을 한 것으로 추산됐다. 같은 맞벌이라도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함에 따라 창출하는 노동가치도 높은 셈이다.
○ ‘집안일도 바깥일만큼 중요’ 인식 전환 계기 될 듯
이번 통계를 접한 전업 주부 이미현 씨(37)는 흥미로운 통계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씨는 “3년 전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후 외벌이인 남편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집안일이 밖에서 일하는 것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며 “실제 임금 통계는 아니더라도 가사노동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주부 백모 씨(42)는 “가사노동을 칼로 무 자르듯 끊어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이 통계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종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제로 가정 내에서 어떤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대규모 국가통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보다 정확하게 산정하면 아이돌봄 서비스 등 가사노동과 유사한 복지사업에 투입해야 할 정부 예산 규모를 적절히 추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법원 판결에 영향 미칠까
정부기관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처음으로 측정함에 따라 이혼 소송이나 전업주부가 상해를 입었을 때 보험금을 산정하는 과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법원에는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다. 재판부가 준용할 만한 공식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민사소송에서 소송 당사자가 개별적으로 제시한 금액을 각 재판부가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로 정하고 있다. 통상 소송 당사자들은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도시 일용직 근로자의 일당과 같다고 보고 소송을 제기한다. 비경제활동인구인 전업주부의 수입을 계산할 때 일용직 노동자의 평균 임금인 ‘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이 같은 계산법은 의료·교통사고로 전업주부가 손해배상액을 청구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이번에 통계청이 처음으로 가사노동의 숨은 경제적 가치를 평가한 만큼 앞으로 해당 수치가 개별 소송에 쓰일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를 판결에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있다. 실제 적용 여부는 이번 통계가 한국 사회에 폭넓게 인용된 이후에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 / 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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