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논설위원 |
망신거리 세 가지에는 ‘팩트 폭격’이 담겨 있다. 도로는 불편하고 추운 날이 많아 사람 살 만한 기후가 못된다. 우스갯소리의 압권은 남자들이다. 이들은 추운 날씨 탓에 보드카를 입에 달고 산다. ‘러시아의 현대판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가장 골치를 앓는 것도 남자들의 음주 문화다. 보드카를 너무 즐기는 나머지 가짜를 마시고 집단 사망하는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남자들은 몸을 거칠게 쓰는 탓에 평균수명이 66세에 그친다.
러시아인들의 짧은 수명은 결국 연금 개혁에도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6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남성은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늦추는 내용의 연금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는 러시아 전역에서 들불 같은 시위를 촉발했다. 특히 남자들은 “죽기 직전 연금을 받으라는 것이냐”며 흥분하고 있다. 반발이 계속되자 푸틴은 개혁안 완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남성은 그대로 강행하고 여성만 63세에서 60세로 세 살 낮춰주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8월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이 나왔다가 격렬한 반발을 샀다. “폐지 주워 연금보험료를 납부하라는 거냐”는 반응까지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럴 계획이 없다고 진화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국민연금 적립기금 고갈이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연금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해졌다. 수급 개시 연령도 현행 62세에서 67세로 늦추는 방안이 나와 있다.
독일·일본·프랑스 등 주요국은 일찍이 홍역을 치르면서 연금 충격을 완화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 급격한 고령화가 현실이 되고서야 땜질에 나서고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올 들어 7월까지 국내 주식투자 평가손실이 10조원에 달한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푸틴은 지지율이 80%대에서 60%대로 추락해도 지난 3일 연금개혁안에 서명했다. 때로는 차르식 개혁이 국가의 미래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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