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상을 비롯해 수많은 조각품을 만들어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고.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제 조각상은 원래 돌 속에 들어 있었고 나는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입니다"라고. 그림이면 그림, 조각이면 조각, 못하는 게 없는 천재 예술가의 겸양처럼 들리지만 곰곰이 새겨보면 고도의 잘난 척 같다.
세상의 모든 물리적 이치를 통달한 인물로 존경받던 아이작 뉴턴도 이렇게 말했다. "제가 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덕분입니다."
자신이 이룬 성과는 선배 과학자들의 위대한 업적 위에 벽돌을 하나 더 쌓은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겸손의 말인데 역시 잘난 척의 진수처럼 느껴진다. 겸손인지 잘난 척인지 구분 안 가는 그의 명언은 한두 개가 아니다. "진리의 바다는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나는 해변에서 조약돌을 줍는 소년에 불과합니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더 멋지게 튈 줄 알았던 천재들의 언어를 어찌 범부(凡夫)가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마는 우리 현실에는 그런 잘난 척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방법이 마땅치 않다.
매년 한글날 즈음이면 으레 상투적 보도나 논평들이 등장한다. 요즘 언어 파괴가 너무 심각하다,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할 거다 같은 개탄과 푸념이다. 뭐, 틀린 지적은 아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인들부터 사이다 발언을 빙자해 막말을 쏟아내고, 인터넷은 배설물과 다름없는 욕설로 뒤덮여 있으니까.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고 그 원초적 욕구를 막을 수는 없다. 근본적 책임은 품격 있게 잘난 척하는 방법을 못 가르치는 한국식 교육에 있다. 그러니 표현의 기술을 배우지 못한 세대가 틀딱충, 개저씨, 한남충, 김치녀, 국개의원이 넘치는 개피곤한 헬조선을 습관적으로 탓한들 뭐라 하겠는가. 심지어 언론매체조차 '듣보잡' '워라밸' 같은 희한한 조어를 마치 전문용어처럼 남발하는 상황인데.
잘난 척은 부모님이 사준 옷과 가방이 아니라 교양 있는 언어와 행동으로 하는 것임을 지금부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30년 후의 한국을 위해 다시 시작했으면 한다. 572돌을 맞은 한글날의 단상이다.
[이동주 비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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