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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신문과 놀자!/환경 이야기]반려동물 사랑하는 마음이 환경보호로 이어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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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윤리

동아일보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중 ‘고양이 집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집사처럼 애지중지 고양이를 모시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호화스럽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먹는 것보다 비싼 먹이를 주는가 하면, 반려동물 카페나 호텔도 있습니다. 아직도 각지에서 굶거나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 반려동물들에게 이렇게 돈을 많이 쓰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반려동물들에게 돈을 많이 쓰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우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어떤 존재에게 재화를 사용하는 것은 그 대상이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존중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윤리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반려동물이 어떻게 윤리의 대상이 되었는지 알아봅시다.

○ 윤리의 대상 여성에서 인종까지 확대

동아일보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가 봅시다. 원시시대에는 누가 재화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을까요? 이것을 추측하려면 사회 시스템의 형태를 생각하는 것이 쉬울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계급은 재화를 누가 많이 소유할 수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귀족, 왕족은 평민이나 천민에 비해 부유했으니까요.

사회에서 계급과 재화의 소유 관계를 알아보는 것의 출발점은 모계 또는 부계사회의 차이를 다루는 것이 될 것입니다. 모계사회에서는 재화를 어떻게 나누어 가졌을까요? 중국 윈난성에 살고 있는 모쒀족은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삼촌입니다. 왜냐하면 결혼 제도가 없기 때문이죠. 모든 재산은 여자들이 소유합니다.

이제 부계사회를 생각해 봅시다. 고려시대까지는 중국 유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 교제가 자유로웠다고 합니다. 여성의 지위가 조선시대보다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부계와 모계가 공존하는 양계사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교의 영향으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도가 도입됐습니다. 겉으로는 중국 고대의 이상사회를 실현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소수 지배계급 중심으로 정치를 안정시키고 경제력을 대물림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남아 선호 사상이 사라지고 남녀 차별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남녀 차별은 정치에서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재산권과 더불어 여성의 지위 향상을 말해주는 것은 참정권입니다. 스위스 같은 선진국도 1971년에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여성이 남성과 온전히 동등하게 존중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이슬람 일부 국가에서는 명예살인이라는 명목으로 아버지나 오빠가 여성을 죽이는 사례들이 있고 경제적으로 남녀 차별이 존재하므로 여성이 완벽하게 존중받는 세상이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여성 다음으로 윤리의 대상이 된 것은 누구일까요? 다른 인종입니다. 노예제 폐지가 바로 그 예입니다. 차별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우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그들이 살기에 불편 없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소외와 차별 없는 세상은 윤리의 대상이 확대되면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 사회는 점점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 애완에서 반려로 바뀐 가족 같은 동물

자, 이제 누가 윤리의 대상이 될까요? 바로 동물입니다. ‘동물학대방지법’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로 초점을 좁혀 봅시다. 반려동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완동물’로 불렸습니다. ‘애완’이 ‘반려’로 바뀐 것은 그들을 진정으로 우리의 동료로 생각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애완’이라는 단어는 대상을 우리보다 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며 언제든지 버려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는 의도가 깔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려’라는 단어에는 우리만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배우자를 반려자라고 부르는 것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도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존재로 변하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아파 친구들과의 모임에 오지 못한다는 사람을 보는 것은 이제는 흔한 일입니다. 가족인 셈이죠.

요즘은 핵가족화로 자식들이 성장하면 대개 따로 삽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외로운 노인들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웁니다.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아프고,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그때 자신의 옆에 항상 있어주는 반려동물이 자식보다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수명은 사람에 비해 아주 짧아 노인들은 이들이 자신과 오랫동안 같이 있어 주길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반려동물에게 쓰는 돈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함부로 판단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볼 때 지나친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윤리의 확장은 환경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환경 파괴는 자연을 대상화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개발해 부를 축적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죠. 환경 문제는 자연의 회복 능력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개발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여성, 인종에 이어 반려동물까지 윤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운데 자연을 대상화하는 인간의 행동은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교육은 우리 환경을 아끼는 행동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교육이 중요한 환경교육의 소재인 것과 같은 맥락이죠. 고양이 집사가 많을수록, 꽃과 나무를 가꾸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커지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환경을 소중히 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겠죠?

이수종 신연중 교사·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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