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확대 등 소득주도성장 밀어붙이는 정부와 보조도 감안
한은 "잠재성장률 수준 성장률 지속"...금리인상 기조 유지
HSBC·노무라 등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11월 인상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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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관전 포인트는 금리 인상 여부가 아닌 한은 총재의 입에 쏠렸다. 기준금리 동결은 기정사실이었던 만큼 한은 총재가 어떤 신호를 보내느냐에 시장 참가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상 깜빡이를 끄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연내 인상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다.
◇고용참사·경기침체에 깜빡이 켜고 직진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불확실한 경제 여건의 전개 방향을 지켜보고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금리 동결 이유를 설명했다. ‘참사’ 수준의 고용 사정과 소비와 투자 부진 등 불안한 국내 여건, 미중 무역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금리를 올리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특히 7월 취업자 수 증가 폭이 5,000명으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부진한 것이 금리동결의 결정적 배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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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체들의 심리 악화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소비자심리지수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기준점(100)을 밑돌아 경기비관론이 낙관론을 앞섰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도 날로 악화되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미 금리역전 폭 확대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수 부진이 금리동결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밀어붙이는 정부와의 보조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내년 사상 최고 수준의 재정지출 확대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엇박자’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한은이 금리 인상 깜빡이를 켜고 직진(동결)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게 됐다. 통상 한은은 소수의견을 통해 시장에 신호를 보낸 후 실제 금리를 움직이는 패턴으로 시장과 소통해왔다. 지난해 11월 금리 인상도 그 전달 소수의견을 통해 시장에 준비할 시간을 줬다. 채권시장의 한 전문가는 “이번 동결 결정으로 한은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기상황을 고려한 동결 결정이지만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에 2,600조원(MW) 이상의 유동성이 풀렸지만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부동산 가격만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이 총재는 ‘저금리가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풍부한 유동성도 (가격 급등의) 요인이지만 일부 지자체(서울)의 개발계획 발표, 대체투자처의 부재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기저에는 사상 유례없는 장기 초저금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금리 인상 소수의견 또 나왔지만···채권금리 급락=7월 소수의견을 낸 이일형 위원은 이번에도 0.25%포인트 인상 소수의견을 밝혔다. 통상 소수의견은 금통위의 신호로 해석된다. 지난해 10월 한은 금통위에서 이 위원이 인상 소수의견을 내자 다음 달인 11월에 한은이 실제로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바 있다.
이 총재도 인상 의지를 수차례 내비쳤다. ‘한은이 (인상) 깜빡이를 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동결 발표 직후 국채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질문에 이 총재는 “기자들이 내 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면 그건 내 잘못”이라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명언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물가상승률도 하반기에는 1%대 후반으로 목표치(2%)에 근접할 것으로 본다. 향후 통화정책은 금융안정 상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도 드렸다”며 “이 정도 확인해드리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미 연준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한미 금리역전 폭은 1.0포인트로 벌어진다”며 “이런 상황을 방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위원의 소수의견에도 이날 채권금리는 급락했다. 시장은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셈이다. 주 실장은 “내수가 극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한 연내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깜빡이 켜고 직진했다’는 비아냥을 받을지언정 경기침체에 대한 책임론을 뒤집어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하나금융투자·교보증권 등 다수의 국내 증권사들도 연내 동결을 점치고 있다.
반면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HSBC는 최근 보고서에서 “고용부진에 금리 인상이 11월로 늦어질 것”이라고 했고 노무라증권도 11월 인상 가능성을 기존 50%에서 55%로 올렸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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