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 훈련 통해 본 日 군사력 팽창 현장
23일 오전 일본 시즈오카현 고텐바시 히가시후지 군사연습장에서 열린 ‘후지화력종합훈련’에서 16식 기동전투차(MCV)들이 연기 속에서 미사일을 쏘고 있다. 고텐바=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조리쿠(상륙)!”
검은색 고무보트를 든 다섯 명의 수륙기동단이 재빠르게 뛰어 각자의 자리에 엎드렸다. 이들은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하는 시나리오에 맞춰 실제로 상륙하듯이 보트를 든 것이다. 이들은 일본 육상자위대의 ‘해병대’라 불리는 대원들로 올해 3월에 출범해 일반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시각, 하늘에 대전차헬리콥터(AH-1S)가 등장하면서 긴장감은 2배가 됐다. 1km 거리의 적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쾅’ 하는 굉음이 마치 후지(富士)산을 찢는 것 같았다. 땅에서는 ‘89식 장갑전투차’가 유도탄을 터뜨리며 자욱한 연기로 시야를 가렸다. 이어 등장한 ‘16식 기동전투차(MCV)’가 빠르게 움직이며 1km 떨어진 적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격퇴했습니다! 작전 완료!”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3만여 관중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 시속 100km 장갑차 보러 폭우 뚫고 3만 명 몰려
3만여 명의 관중은 폭우 속에서도 자위대의 훈련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고텐바=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3일 오전 시즈오카(靜岡)현 고텐바(御殿場)시 히가시후지 군사연습장에서 열린 ‘후지화력종합훈련’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이다. 후지화력종합훈련은 자위대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개하는 최대 규모의 실탄 사격 훈련이다. 1966년부터 시작된 이 훈련은 현재 일본의 군사력 수준을 알 수 있는 자리이자 자위대의 신형 무기 성능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방위성 관계자는 “이번 훈련에 소요된 예산은 6억 엔(약 60억7308만 원)”이며 “동원된 자위대원들은 2400명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올해 훈련에서 처음 등장한 것 중 하나는 16식 기동전투차(MCV)다. 지난해 실전 배치된 이 장갑차는 105mm 강선포를 장착하고서도 무게가 26t으로 가벼워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다. 이날 훈련에서 MCV는 포를 쏘고 재빠르게 사라지는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적의 신호를 파악하고 전파를 방해, 교란시키는 ‘전자전’을 위해 레이더가 달린 장갑차, 고고도 무인 정찰기 등도 훈련에 등장했다.
‘일본판 해병대’로 불리는 수륙기동단은 ‘AAV7’이라는 수륙양용차와 함께 등장했다. AAV7은 수륙기동단이 올해 도입한 것으로 해상에서 1시간에 7.2km를 이동할 수 있다. 이날도 상륙작전을 가정한 순간에 AAV7이 등장했다.
외딴섬을 침입한 적군을 육해공 자위대가 힘을 합쳐 물리친다는 게 이번 훈련의 시나리오다. 2012년 9월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중국과의 분쟁 이후 6년째 이어지고 있다. 히로타 요시로 육상자위대 후지학교 소령은 이날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적에게 빼앗긴 일본의 영토를 탈환하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폭우가 내린 평일임에도 현장에는 약 3만 명의 시민이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몰렸다. 이들은 2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사람들이다. 시즈오카현에서 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고베(神戶)시에서 왔다는 회사원 엔도 사부로 씨는 “평소 이런 무기들이나 폭발음 등을 체감한 적이 없었다”며 “자위대의 모습에 매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 일본, 7년 연속 방위비 증강… 5년째 사상 최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조짐이지만 일본 정부는 내년에도 방위비를 대폭 늘린다는 방침이다.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 진전이 불투명한 데다 중국이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방위성은 2019년도 국방예산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5조2986억 엔(약 53조6300억 원)을 요구할 방침이다. 2018년 당초 예산(5조1911억 엔)보다 1000억 엔 이상 늘어났다. 일본의 방위예산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인 2013년도부터 7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비 확대는 앞으로 더 거세질 조짐이다. 일본의 군사비는 현행 중기방위력정비계획(2014∼2018년도)에 따라 미군 재편 관련 경비 등을 제외한 당초 예산 베이스로 연평균 0.8%씩 증액할 수 있다. 하지만 방위성은 연말에 개정되는 차기 중기방위력정비계획(2019∼2023년도)에서 방위비 증가율을 1% 이상으로 늘리려 한다. 이번에 그 첫해인 2019년 예산을 대폭 증액한 것은 바닥 고르기를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방위성은 지금까지 ‘북한 위협론’을 군비 확장의 구실로 삼아 왔다. 이번에도 “북한의 위협은 변함없다”며 육상배치형 미사일 방어시스템 ‘이지스 어쇼어’와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A 구입비 등을 예산안에 포함시켰다. 중국 견제를 위한 자위대 증강 비용도 추가됐다.
○ ‘바이 아메리카’―무기 대부분 미국으로부터 ‘유상 군사원조’로 도입
일본이 최첨단 무기의 대부분을 미국으로부터 ‘유상 군사원조(FMS)’ 방식으로 도입한다는 점도 방위비 증가를 부채질한다. FMS 조달 가격은 미 정부 주도로 결정되기 때문에 예산 감축이 사실상 어렵다. 이지스 어쇼어뿐만 아니라 향후 42기를 도입할 예정인 F35A 조달 가격도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방일 당시 아베 총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본이 미국에서 막대한 양의 무기를 사는 일이다. 그래야 한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무기를 만들고 있다”며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강조한 바 있다. 그 뒤 일본은 이지스 어쇼어 도입에 속도를 냈다.
일본이 FMS 방식으로 미국과 체결한 무기 계약은 2012년 1372억 엔에서 2016년엔 3.5배가 넘는 4881억 엔으로 늘었다. 결국 첨단 무기 구매와 미일 동맹 강화가 동전의 양면처럼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기사에서 미국 측이 부르는 가격대로 최첨단 무기 비용이 결정되는 등 일본의 방위장비 구입을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완성된 무기 도입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공동 개발을 통한 자국의 방위산업 기반 강화도 노리고 있다. 미일이 공동 개발 중인 요격 미사일 ‘SM3블록2A’가 대표적이다.
미국 록히드마틴사는 일본이 2030년 도입 예정인 차세대 전투기 개발 생산의 50% 이상을 일본 측이 맡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차세대 전투기는 미 정부에 의해 수출이 금지된 스텔스 전투기 F-22의 뒤를 잇는 기종이다. 어떤 동맹국에도 완제품 판매를 금지했던 F-22의 빗장을 일본에는 풀겠다는 것이다. 이 제안대로 된다면 미일 동맹 강화는 물론 일본의 방위산업이 도약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 열강들 방위비 증강, 인도태평양 전략도 영향
일본의 군비 확장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열강들의 군비 경쟁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일본이 특히 신경 쓰는 것은 중국의 군사굴기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강군몽(夢)을 부쩍 강조하면서 국방비가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중국의 국방비는 2282억 달러(약 256조8400억 원)로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중국의 해·공군력 집중 강화는 동북아시아 패권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국방비를 늘리고 있다.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적힌 내년도 국방예산은 역대 최대인 7170억 달러(약 806조6200억 원)다.
중국을 견제함으로써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의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11월 내세운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읽힌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 호주 인도와 손잡고 안보와 경제 등에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구상이다. 당초 아베 총리가 2016년 아프리카개발회의에서 꺼낸 아이디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 채용했다. 5월에는 태평양사령부 간판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꿔 달았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 / 고텐바=김범석 특파원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