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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전찬일의 내 인생의 책]①지와 사랑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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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의 사랑이란

경향신문

살다 보면 우리네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단절적 존재 내지 텍스트와 조우하기 마련이다. 1975년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던 <지와 사랑>(Narziß und Goldmund)도 그중 하나다. 그 내·외적 성격은 말할 것 없고 삶과 죽음을 향한 태도 등에서 더 이상 대조적일 수 없을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통해 인간 일반의 양면적 존재성을 탐구한 헤르만 헤세의 걸작 장편 소설.

그때부터 그 소설은, 43년을 나와 함께 살아왔다. 10대 중반의 사춘기 소년이 50대 초반의 세계적 작가가 펴낸 소설에 그토록 강렬하면서도 지속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이참에 꼼꼼히 다시 읽어봤다. 그 매혹은 여전히 압도적이며, 더 깊어졌고 넓어졌다.

예의 구조주의적 이항 대립들에 질색해왔으나, 인간은 그 이항 대립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날 수는 없는 존재인 것도 사실이다. 정신·영혼 대 육체·몸, 반복 대 차이, 일상 대 일탈 등등. 인간은 그 어느 한쪽에 조금이라도 더 무게중심을 두긴 하나, 그 양극 사이를 오가며 갈등·화해하며 살다가 사라져가는 존재들 아닌가. 헤세는 정착(지향)적인 나르치스와 노마드/유목민적인 골드문트를 통해 그 대립들의 통합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 실은 그 둘은 하나라는 점을 역설하며….

골드문트가 죽음에마저 호기심을 품고 기쁜 마음으로 죽어가기 전, “내 삶에 가장 모자란 게 사랑”이었으며 “내 마음이 메마르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는 자리가 내게 남아 있는 건 오직 자네 덕분”이었다는 나르치스와, “난 언제나 자네를 사랑했어, 나르치스. 내 삶의 절반은 자네에게 구애 중이었다네”라는 골드문트 사이의 사랑 고백은 내가 아는 지고의 러브 신이다.

<전찬일 | 영화·문화콘텐츠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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