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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전문가 10인 `일자리 쇼크` 긴급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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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참사 매경 10대 제언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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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대폭인상 첫단추 잘못끼워…업종·지역별 차등화를

7월 취업자 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10년 1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정부 출범 1년 만이다. '투자절벽'에 이은 '고용쇼크'다. 정부가 고용쇼크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매일경제신문은 대한민국 고용쇼크의 해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긴급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전문가들 의견을 모아 매일경제가 제시하는 10대 제언이다.

정부는 고용시장 악화가 최저임금 인상 탓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집해 왔다. 전문가들 의견은 반대다.

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성균관대 교수)은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이나 고령화를 고용 부진 요인으로 꼽고 있지만 통계청 통계를 종합적으로 보면 최저임금 상승 파급 효과라는 시그널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며 "일자리 정부를 외치며 출발했지만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격"이라고 지적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한계선상에 있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고용 여력을 크게 악화시킨다"며 "결국 종업원 수를 줄이고 가족이 투입되거나 아예 문을 닫으면서 취약계층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차별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상황에서는 최저임금 차별화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생산성이 크게 차이 나면 최저임금도 달라지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최저임금 차별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7월부터 실시한 근로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일자리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친노동 정책으로 꼽힌다.

김인철 성균관대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정책이 너무 근시안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당장 어떤 목표를 급하게 달성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커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밀어붙이기식 근로시간 단축 정책 시행이 기업의 비용 증가를 가져오고, 이것이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탄력근무제를 비롯한 유연근로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연근로제는 근로시간 결정이나 배치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유연근로제를 잘 활용하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 현장 충격을 다소 완화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이 획일화된 잣대 대신 확대된 탄력근무제를 요구하는 이유다.

무리하게 노조 편향 정책을 추진하는 고용노동부에 대한 비판도 강했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시장에서는 고용부가 지나치게 노조 측 주장을 대변한다고 느끼고 있다"면서 "국가 경제 전체를 보고 고용부가 경영계와 노동계 입장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조, 특히 대기업 노조가 스스로 기득권 세력이 돼서 본인 이익만 보호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귀족 노조'는 본인의 고용 안정성을 위해 신규 고용을 막는 등 지대추구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정부가 대기업 중심의 노조 주장에 이끌려가서는 안 되고, 냉정하게 대응하면서 기득권 혁파 차원에서 노조 개혁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조 구성원은 일자리가 있는 근로자이므로 이들은 일자리 질적 개선에 치우치게 되고 일자리 양적 측면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정부는 균형을 잡고 일자리 수 증가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가 친노동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우리나라 가격 경쟁력이 임금 급상승에 따라 국제적으로도 크게 떨어졌다"며 "현재 대기업 노조는 조직화하고 기득권화돼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이야말로 경직된 노동시장 등 노조 개혁을 해야 할 적기"라고 조언했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반기업 정서로 기업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 사기 위축에 따라 투자와 고용 같은 본연의 활동을 줄이면서 경제 역시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기업의 기를 살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일으키는 게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기업 정서의 주요 원인으로는 문재인정부가 '공정경제'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다양한 기업 옥죄기 정책이 꼽힌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검찰이나 국세청 등 이른바 사정기관이 공정경제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무차별적으로 조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도 "계열사 간 거래는 기업의 경영 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 '계열사 간 거래'가 '정상적 시장가격'에 근거하고 있다면 이것을 기업 비리로 무작정 몰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반기업 정서는 경제에 마이너스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동근 원장은 "최근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고 기업 경영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특히 제조업은 해외 이전이나 사업 자체를 접으려는 추세가 많아 안타깝다"며 "과거처럼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 국회, 노동계, 국민이 모두 힘을 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출범 때부터 규제 혁파를 주창해 왔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과는 저조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분석이다. 원격의료, 차량공유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자리 잡은 주요 서비스 사업이 한국에서는 규제라는 벽에 갇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사례가 즐비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서는 말뿐인 규제 혁파가 아닌 혁명에 가까운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권태신 원장은 "정부도 최근 혁신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기업 주도의 혁신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를 목표로 과감한 규제 완화와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시간 단축 '고용불안' 부메랑으로…탄력적 적용을

윤창현 교수 역시 "대폭적인 규제 완화와 투자 촉진 분위기 조성 등을 통해 기업의 투자 마인드를 회복시키고 이를 통해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촉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 경제 회복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하방 리스크에 우리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나마 반도체와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수출이 한국 경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통상 압박과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이 한국 경제에 중대 변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의 일자리 기여도가 높은 상황에서 수출이 꺾이면 고용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이동근 원장은 "중국 경제가 거품 조정기에 들어선다는 지적이 많은데 대미 통상 마찰이 장기화하면 중국 수출기업들이 선제적으로 투자 조정에 들어가는 식으로 한국 경제에도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김정식 교수는 시장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외교 역량을 통해 통상마찰을 최소화하는 것 외에 불공정 무역 조치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정부도 기업들의 신남방·신북방으로 대표되는 신흥시장 공략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은 현실을 외면한 정부만능주의와 이에 따른 가격 통제가 더 큰 비효율을 낳는다고 비판한다.

노동시장 가격 변수인 '임금'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해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 대표적이다. 윤창현 교수는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부 정책으로 인건비 비율이 높아지니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중장기적인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경수 학회장도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은 정부 재정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집값이 대표적이다. 김정식 교수는 "강남 집값 잡기가 경제 시스템을 건전하게 만드는 방법일 수 없다"며 "거래 규제 때문에 압구정 아파트값이 오히려 '3.3㎡당 1억원'에 달하는 식으로 오르면 오히려 우리 경제 전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시장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허물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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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는 여전히 J노믹스 핵심 기조로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 경제 참모들이 하루빨리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인정하고 경제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태신 원장은 "인위적 소득 증대를 통해 소비 수요를 높이고 투자와 성장을 유도하는 것은 대외의존도와 개방성이 높은 한국 경제에는 한계가 많은 이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지난 9년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상회하는 임금 증가율을 이미 경험했지만 '소득 증가→소비 증가→투자 증가'의 선순환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윤창현 교수는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하게 만든 이념적 배경이 바로 소득주도성장"이라고도 했다.

구정모 강원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거대한 정책 실험을 정부가 그동안 해왔고 이제는 통렬한 반성과 함께 정책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는 걸 고용시장이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교수도 "일자리 참사는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사실 소득주도성장 이론은 경제학의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 이것 때문에 거시경제 전체의 큰 틀을 보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무리한 탈(脫)원전 정책이 일자리를 죽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전수출 국민행동에 따르면 현재 국내 원전산업은 700여 개 기업이 연간 매출 25조원을 올리며 고급 일자리 3만5000개를 만들고 있다. 간접고용까지 포함하면 원전 관련 일자리는 21만명으로 추산된다.

온기운 교수는 "수출 회복과 일자리 부족 해결을 위해 원전산업을 쉽사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온 교수는 "원전을 없애면 양질의 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 원전 관련 일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인 정부가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새 원전을 짓지 않고 기존 원전 수명은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기존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와 함께 일자리 소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대참사를 불러온 경제팀에 대한 책임론이 높아지고 있다. 윤창현 교수는 "더 늦기 전에 필요한 경우 적절한 인적 쇄신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일자리수석과 경제수석을 교체했지만 이보다 더 큰 폭의 대대적인 경제팀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경제팀에 가장 필요한 요건으로는 대통령과 국민의 신뢰를 꼽았다. 김인철 교수는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는 최종 정책결정권자 신뢰가 중요하고 국민 지지를 받으며 정책을 실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이 외교안보뿐 아니라 경제 문제에서도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하루빨리 복잡한 국내 경제 현안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갈등설 등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경제 컨트롤타워가 조속히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실제로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두 인사가 고용위기를 비롯한 주요 경제이슈를 놓고 진단은 물론 해법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이견이 외부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명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관료사회,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과 경제 현장에선 엇갈린 메시지나 나올 때마다 혼란에 휩싸인다. 누구의 말을 믿고 준비하고 따라야 하는지 계속 헷갈린다면 정책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윤종원 신임 청와대 경제수석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직까지 정책 혼선이 이어져 기존 세력 다툼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직접 경제 현장을 챙기면서 통일된 메시지가 나올 수 있도록 나설 때가 됐다는 얘기도 거론되고 있다.

[손일선 기자 / 윤원섭 기자 / 이유섭 기자 /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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