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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시가 있는 월요일]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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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내가 젊을 적 쓰고자 했던 것들은 어떤 빈곤함의 형상,
때론 논리와 신랄한 야유
잠자리 날개 같던 당신의
이마와 별무리와 당신의 끝,
무섭지는 않았지만
그저 아이일 뿐이었을 때 실수로 듣게 되었던 방의 서걱임
우연한 바다
우연히 흔들리던 바다의 수상한 노래
(중략)
나는 평범한 사람으로 뒤룩뒤룩 늙었지
이리도
늙고 뚱뚱해져서야
말의 해방, 말의 깊이 따위를 향하여 손 내밀다니
겁도 의미도 없이
그저 남이 되려고 만났던 철없는 애인인 양

- 김안 作 <시인의 말> 중


읽을수록 감칠맛이 그만인 시다. 청춘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의 길을 걸어온 한 시인의 비망록이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별무리와 당신'에 대해 쓰고 싶어한다. 그때는 그것만이 아름다우므로….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뒤룩뒤룩해지면 글도 달라진다. '별무리와 당신' 대신 '말의 깊이'가 다가온다.

어느 것이 좋은 것일까. 답은 없다. 영화 제목처럼 인생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이니까.

시를 쓰면서 살아온 한 생이 그대로 담겨 있는 멋지고 단단한 작품이다. 우리는 늘 '수상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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